기영윤 농협구례교육원

네덜란드의 동물학자이자 영장류학자인 프란스 드발은 카푸친 원숭이 실험을 통해 인간뿐만 아니라 많은 동물 사회에서도 ‘공정성’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 밝혀냈다. 드발은 2003년 네이처에 '원숭이들이 불평등한 보수를 거부하다(Monkeys reject unequal pay)'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했다.

실험은 카푸친 원숭이 두 마리에게 같은 과제를 수행하게 한 후, 각각 오이와 포도라는 다른 보상을 주었을 때 원숭이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내용이었다. 두 원숭이는 각각 다른 우리에 들어가 있지만 두 우리는 붙어 있고 투명하기 때문에 서로의 보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설계되었다. 두 마리 모두에게 오이가 보상으로 주어졌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한 마리에게 포도를 주자 상황은 반전했다. 오이를 받은 원숭이가 오이를 먹는 대신 실험자에게 던져버리고는 항의의 표시를 하였다. 수차례 실험에서 원숭이들의 행동은 일관되게 나타났다.

공정성은 개인과 사회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장착된 도덕적 감정

비록 포도보다 맛은 없지만 오이를 던지는 것보다는 먹는 것이 합리적이다. 낮은 보수나마 그것을 팽개쳐서 얻는 이익보다 받아들였을 때 얻는 이익이 분명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원숭이는 오이를 던져버렸을까?

드발이 실험에서 밝혔듯이 경제적 이익에 앞서 ‘공정성’이라는 개념이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에게는 진화과정에서 본능으로 각인되어 있다. 공정성의 가치가 집단생활의 원동력인 협동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공정성은 개인과 사회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장착된 훌륭한 도덕적 감정인 셈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나 갈등의 한 가운데에는 공정성이 있다. 촛불은 커다란 정치적 이슈가 아닌 특정인의 불공정한 대학 입학이 불씨가 되어 혁명으로 타올랐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 논쟁의 중심은 채용의 공정성에 있었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학입학 전형에서 수시를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사법시험을 부활하자는 요구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공정성이 관건이다. 심판이 공정하지 못하면 게임은 싸움으로 번질 뿐만 아니라 선수 어느 누구도 경기력향상을 위한 노력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렇듯 구성원이 공정성을 의심하는 순간 한 사회는 서서히 무너져내린다.

'총,균,쇠'로 잘 알려진 문화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지리적 요인과 함께 제도적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았는데, 그가 한국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의 요인 중 하나로 꼽은 것은 ‘평등한 출발’이었다. 경자유전의 원칙하에 이루어진 토지개혁을 통해 모두가 자신의 노력의 결과를 믿고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발전국가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권력(權力)의 한자 권은 저울의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입법권이든, 사법권이든, 행정권이든 권력이란 저울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저울의 추가 기울어져 있다면 신뢰는 무너지고 편법만이 횡행한다. 노력 대신에 요행에 기대게 된다. 그러므로 권력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란 기울어진 저울추를 바로잡아 균형을 꾀하는 일이다.

우리는 나라의 경제 체제를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합리성 추구를 보장하는 자유시장경제로 운용하자고 헌법으로 약속하였다. 그러면서도 자유시장경제가 안고 있는 한계인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국민경제의 균형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할 의무를 국가가 진다고 하였다. 공정함이 담보되지 않는 성장은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생태환경 보존하려는 농업인들 노력이 보상받게 된다

농식품부는 최근 쌀 목표가격에 물가상승률이 반영되는 방안과 직불제를 농업의 환경보전 기능을 보상하고 소농·영세농에게 실질적인 직불금이 돌아가도록 하는 공익형으로 개편하는 안을 내놓았다. 이제껏 경시되어왔던 생태환경 보존과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는 농업인들의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농업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몫만큼 공정한 보상을 받기를 바란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미 많은 농업인이 농사를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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