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이어 '혜경궁 김씨' 사건 키워 … 총선 앞두고 '제살깎아먹기' 경쟁 우려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주가 이재명 경기지사의 부인인 김혜경씨라는 경찰의 수사 발표로 이 지사는 물론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까지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다. 경찰의 발표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이 지사가 정치적 치명상을 입는 것은 물론 민주당도 신뢰성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혜경궁 김씨'에 대한 경찰 수사 발표 이후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발언하는 홍영표 원내대표 |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8일 기자들과 만나서도 '혜경궁 김씨' 논란에 대한 입장을 낼 것인지 묻는 질문에 "대변인이 다 냈다"며 말을 아꼈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17일 경찰 수사 발표 이후 "현재로서는 당사자가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사법적인 판단을 보고 난 후 당의 최종 입장을 정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지사가 이날 오전 경찰 수사 결과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갖는 등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는 만큼 좀 더 지켜본 뒤 출당 등의 논의를 진행해도 늦지 않다는 게 당내 분위기다.

하지만 경찰 수사 발표가 사실로 확정되면 이 지사와 민주당은 치명상을 입게 돼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당장 이 지사에 대해선 경기지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이 대표 역시 당 대표 당선 과정에서 이 지사측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책임론이 불가피하다.

보수야당은 이 지사와 민주당을 싸잡아 공격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송희경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경기지사 부부는 언제까지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혜경궁 김씨'가 사실이라면 이 지사는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와 상관없이 즉각 책임지고 사퇴해야 하며 거짓 후보를 공천한 집권 민주당도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하고 반성문을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도 "민주당이 이 지사 건에 대해 손 놓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무책임하다"면서 "공당으로서 기본이 없는 무사안일이며 심각한 도덕불감증"이라고 공격했다.

야권의 맹공에 민주당은 수세에 몰린 모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혜경궁 김씨' 사건을 키운 건 민주당이었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게재해 문 대통령 지지층와 마찰을 빚었던 '혜경궁 김씨'는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해철 민주당 의원이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면서 수사 대상이 됐다. 해당 계정에서 이 지사와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경쟁을 벌이던 전 의원을 비난하는 글을 연달아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전 의원은 지방선거 이후 당내 분란 등을 우려해 고발을 취하했지만 이정렬 변호사 등 친문 성향 인사와 누리꾼들은 '혜경궁 김씨'를 공직선거법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추가 고발했고, 경찰 수사가 지속됐다.

경찰 수사 발표가 나오자 '혜경궁 김씨'를 고발했던 전 의원은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전 의원은 방송국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혜경궁 김씨'가 이 지사와 관련 있는 인물일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며 "결과가 이렇게 나와서 당황스런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정부여당을 힘들게 했던 '드루킹 사건'을 표면화한 것도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올 1월 매크로 등을 이용한 조작 혐의가 있는 댓글 작성자에 대해 경찰에 고발했다.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을 비방하는 악성 댓글 배후에 보수야당이 있을 것이란 의심에서였지만 정작 수사 결과 댓글을 조작한 드루킹은 민주당원이었고, 김경수 경남지사와 교류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드루킹 사건은 특검으로까지 이어졌고, 김 지사는 기소 대상에 포함돼 재판을 받고 있다.

좀처럼 국민들의 지지를 회복하지 못하는 야당의 공격보다 민주당이 결과적으로 자충수를 두면서 스스로 곤경에 빠뜨린 셈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주당에서 이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2020년 총선과 차기 대선이 다가올수록 내부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야당이 존재감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민주당의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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