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기한 10일 앞두고 예산소위 구성 안 해 심사권 내팽개쳐

양당 내부 홍역에 대립각 세워 … 국조·인사·남북 마찰 가속

'2019년도 예산안' 심사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소위 구성도 못하고 있다.

본회의에서 통과된 이후에도 위원구성비율에 대한 이견으로 사법개혁특위 등 6개 특별위원회를 두달 반이 지난 후에야 가동한 '파행'의 재판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 1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힘겨루기가 갈수록 거세진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정치가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일 한국당, 바른미래당, 정의당은 오전에 의원총회를 열고 예산안 심사문제와 함께 국정조사, 민생법안 등에 대한 입장을 논의했다. 여당은 오후에 의원총회를 갖기로 했다. 거대 양당간, 진보-보수진영간 대립구도가 조만간 해소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 멈춰서 있는 예산안 심사 = 당장 예산안 부실심사가 문제다.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법정시한(11월30일)까지 11일밖에 남지 않았다.

예산안 심사가 멈춰 서 있다. 지난 15일로 사실상 상임위 예산안 심사기한이 끝나 예결위의 예산소위를 통해 감액, 증액 심사를 해야 하지만 구성문제부터 거대 양당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15명으로 구성되는 예산소위 구성에서 비교섭단체를 배려해야 한다는 여당과 50명의 예결위원 비율에 맞춰야 한다는 한국당이 맞서 있다.

이러한 기류는 하반기 원구성과 6개 특위 구성 난항, 평양회담 대통령 비준, 인사청문회와 대통령 임명 강행, 국정감사 중 장관교체, 예산안 심사중 경제부총리 경질 등 증폭해온 여야간 갈등과 맞닿아 있다.

예산소위 구성이 안 된 채 예산안이 통과된 것은 1993년과 2009년 2번뿐이다. 1993년엔 김영삼정부 첫해로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와 함께 안기부법 개혁입법과 추곡수매제가 걸려 파행이 이어졌다. 2009년엔 이명박정부 2년차로 4대강 예산과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던 민주당 의원들이 2주간 본회의장 점거하자 여당인 한나라당 소속 김형오 국회의장이 여당 의원총회에서 직권상정, 여당 단독으로 예산안을 처리했다.

◆ 내부 홍역을 앓고 있는 거대 양당 = 올 예산정국은 여야간 난맥상과 얽혀 있어 더욱 풀기 어려운 과제다. 여당은 문재인정부 2년차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 담긴 국정과제관련 법안과 함께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2019년 재보궐선거,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 등 정치일정을 고려하면 올해 안에 국정과제 성과를 내야 하는 등 갈 길이 바쁘다. 그러나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 전통적 지지층들과 마찰이 심해지는 데다 '이재명 파동'까지 겹치면서 내부적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가 친박세력이 그대로 남아있는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공세에 밀릴 수 없다고 보는 이유다.

자유한국당 역시 내부전투가 만만치 않다. 내달 원내대표 선거에 이어 인적 쇄신, 내년 2월 전당대회 등으로 이어지는 일정과 맞물려 여당에 날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특히 대통령 국정지지도(한국갤럽조사)와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지지층 결집을 위한 한국당의 '반대 전략'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국당은 '박용진 3법'에 대항해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나섰고 지난 국감에서 제기했던 '고용세습 국정조사'요구와 관련해서도 상임위 보이콧 등 강도 높은 전면전에 나섰다.

◆ 강공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다당구조 = 여소야대에 다당구조는 여당에 유리하지 않다는 점은 여당이 '자동부의제'에 기댄 강공책을 고수하기 어려운 이유다.

세입예산안은 예산안과 같이 자동부의되지만 아동수당 등 세출예산안은 반영되기 어렵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의 구직급여, 자영업자 실업급여, 사회보험사각지대 해소, 모성보호육아지원, 핀테크지원, 종합부동산세, 기초연금 지급, 장애인연금 지급 등 8개 사업을 '법 제정과 개정을 전제로 한 예산사업'으로 지목했다. 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 인상, 아동수당 지급, 구직·실업 급여 지급 등은 세출예산으로 상임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 여당이나 진보진영만으로는 예산안에 반영하기 어렵다.

예산안의 부결가능성도 부담이다. 지난해에도 자유한국당이 보이콧을 하면서 178명 참석, 160명 찬성으로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부결'되면 정부의 예산안 편성과 국무회의, 국회 상정에 이어 상임위, 예결위 심사 등 처음부터 예산심사일정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다. 보수진영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의원수는 145명이다. 보수성향의 무소속 3명(서청원, 이정현, 정태옥)과 대한애국당(조원진)을 포함하면 149명이다. 최경환 의원 등 구속돼 있는 의원과 바른미래당 소속이면서 민주평화당과 함께 하는 비례대표 3명을 빼면 과반에 크게 못 미친다. 그렇다고 여당이 과반을 자신하기도 어렵다. 여당의원(129명)들을 모두 참석시키기도 쉽지 않은데다 민주평화당, 정의당, 무소속이 모두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확신하기도 어렵다. 모험을 하기엔 위험이 너무 크다는 얘기다.

◆ 결국 해법은 당청에 = 막힌 국회 상황을 뚫는 방법은 결국 여당과 청와대의 몫이다. 거대 야당의 막무가내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국정과제를 실행하기 위한 법안과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책임은 집권세력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중재력 역시 시험대에 올랐다. 의회주의자인 문 의장이 여야간 첨예한 대립을 뚫고 '자동부의제'를 압박도구로 활용해 합의점을 만들어낼 지도 관심이다.

여당 핵심관계자는 "현재는 청와대와 여당이 합의를 끌어낼 만한 정무적 도구가 부재한 상태인데다 정치권 전체적으로 협상과 타협이 없는 '정치 부재의 시대'를 맞고 있다"면서 "결국 청와대가 풀어야 할 대목이 있고 문 의장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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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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