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고건수 역대 최고 … '원금·고수익 보장', 다단계와 결합해 단기간에 피해규모 커져

"OO코인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친한 지인이 투자하라고 자꾸 권하는데 괜찮은 업체인지 몰라서요."

유사수신행위 피해자들의 인터넷 카페에는 최근까지 가상화폐인 코인 관련 문의글이 자주 올라온다. 대부분 최소 연 20~30%의 고수익을 보장하는 형태여서 "100% 사기"라는 댓글이 여지없이 달린다.

원금과 고수익을 보장하면서 인가·허가, 등록·신고 등을 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는 유사수신행위규제법으로 처벌을 받는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유사수신행위 신고·상담건수는 올해 9월말 현재 712건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신고·상담 건수는 2015년 253건에서 2016년 514건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고 지난해 712건으로 늘었다. 올해 9월말 이미 지난해 1년간의 신고·상담과 같은 건수를 기록한 것이다.

가상화폐와 맞물려 코인 관련 유사수신 신고와 상담 건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라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갈수록 지능화·다양화 = 유사수신행위 피해자 카페에는 40여개의 가상화폐 관련 불법업체 명단이 공지돼 있다. 불과 1~2년 만에 가상화폐가 유사수신행위 범죄 유형의 대표 주자가 됐다.

국내 유사수신범죄는 1990년대 후반 부산지역의 삼부파이낸스 사건을 첫 사건으로 보고 있다. 삼부파이낸스는 부산지역 중소기업과 서민들에게 제도권 금융기관 보다 훨씬 높은 연이율 25~30%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투자금을 유치했다.

하지만 결국 삼부파이낸스 회장은 투자금 108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고 투자자 6532명은 투자금 2284억원을 받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사기관이 384개 파이낸스 업체를 수사해 1700여명을 기소했으며 피해규모는 1조7000억원에 육박했다.

이후 유사수신범죄는 꾸준히 이어졌고 금감원과 경찰의 주요 유사수신행위 사례들을 보면 피해자수가 적게는 100여명에서 최대 7만명에 이르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피해액도 1억원에서 4조8000억원까지 다양하다. 세간에 알려진 조희팔 사기사건이 7만명의 피해자와 4조8000억원의 피해를 일으킨 사상 최대 사건이다.

유사수신범죄는 파이낸스사 사건 이후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다. 고리 대부업, 인터넷 게임, 농수축산물 판매, 부동산 개발, 주식, 유흥업소 등 다양한 업종에 대한 투자로 바뀌었다. 이들은 투자원금을 보장하면서 연간 18~520%의 고수익 배당을 약속했다.

전복 양식을 미끼로 하는 투자를 비롯해 제주 커피농장 사기 등 실물이 있어 보이는 사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수법이 바뀌었다.

2014년에는 부동산 개발과 중권투자를 가장한 유사수신범죄가 각각 24.3%, 229.9%를 차지할 만큼 많았다.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높아지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해 호텔이나 콘도 등에 투자하는 것처럼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

이밖에도 비상장주식투자사업, 중국 거대기업 펀드, 종합금융컨설팅, FX마진거래, 핀테크 등 증권투자 매매사업을 가장하는 방식으로 범죄수법이 진화했다. 소위 말하는 OO인베스트, △△투자조합, 투자금융 등의 상호를 이용해 투자자들을 속이고 있다.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이 어떤 식으로 바뀌든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고수익을 보장하는 유사수신범죄행위는 같고 결국 투자금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최근에는 P2P대출이 크게 늘면서 크라우드펀딩을 빙자한 유사수신행위도 벌어지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을 내세운 유사수신업체 A사는 건조밥 생산업체인 B사에 투자하면 3개월 내에 투자금의 250%를 수익금을 주겠다며 투자금을 모았다. 2214명에게서 1구좌당 130만원의 투자금을 받았다. 투자금 147억원을 받아 챙긴 A사 대표이사 등 6명은 유사수신행위와 다단계사기로 사법처리됐다. A사는 투자자들에게 유명한 업체라며 공장견학을 시켜주기도 했지만 당시에 B사는 이미 35억원의 채무를 갚지 못해 공장운영을 중단한 상태였다. A사는 공장설비 등 중국에 플랜트 수출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국내에서도 기계 설비 등을 판매한 적이 없고 중국 업체와의 계약도 없었다. 투자금 모집방법은 후순위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선순위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전형적인 유사수신행위였다. 투자금 대부분은 피라미드 조직 운영진에 대한 수당으로 지급됐고 사업관련 비용으로 지급된 자금은 없었다.

◆잡혀도 출소 후 새로운 수법으로 다시 범행 = 유사수신범죄가 계속 늘고 있는 것은 범죄자들이 출소 후에 새로운 수법을 구상해 다시 범행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로 손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는데 반해 처벌은 약하다는 게 구조적인 문제점이다.

C씨는 2009년 투자자들로부터 유사수신행위로 1600억원을 챙겼는데 징역 4년을 복역하고 풀려났다. C씨는 출소한지 얼마되지 않아 버섯을 재배하는 영농조합을 설립해 매월 투자금의 8%씩, 연간 90%의 수익을 보장해준다며 투자자들을 모집해 7개월간 1060명으로부터 116억원의 출자금을 받아챙겼다. 양돈사업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속인 '도나도나 사건'과 비슷한 방식이다. 도나도나 사건으로 처벌을 받은 D씨도 동일한 수법으로 여러 건의 피해를 발생시켰다. 이들은 2012년 이후 정부의 조합 육성정책에 편승했고 출자금을 내면 조합원들에게 이익이 공평하게 배분된다는 점을 악용했다.

김수헌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장은 "유사수신행위로 처벌을 받은 범죄자들이 교도소에서 시대흐름에 맞는 방식의 수법을 개발해서 출소 후 실행에 옮기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금 환수와 함께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사수신범죄의 경우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사업아이템과 수익구조를 설계하면 그 이후부터는 투자자들이 모집수당 등을 더 받기 위해 지인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큰 자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구조다.

유사수신행위는 주로 다단계 방식과 결합하면서 투자금의 규모를 키우는 게 특징이다. 단순히 고수익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후원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지인을 끌어들여 밑에 두면 매출실적의 일정부분을 수당으로 받기 때문에 확산 속도가 빠르고 피해 규모가 커지게 된다.

하지만 유사수신행위의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이라서 '10년 이하의 징역인 사기죄'에 비해 형량이 크게 낮다. 특히 사기죄는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인 경우 특가법이 적용돼 최대 무기징역을 받을 수 있는데 반해 유사수신행위는 피해액에 연동되는 형량 강화 규정이 없다.

금융당국 2년전 대책 내놨지만 법률개정안 국회서 처리 안돼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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