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간 10여편, 다음주는 최저임금 관련 … 중앙은행도 고용문제 외면할 수 없는 상황 반영

구체성 결여 지적도

한국은행(총재 이주열)이 올해 막판 임금과 고용 등 노동문제에 대한 각종 보고서를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다. 물가와 금융안정을 제일의 목표로 하는 중앙은행이 노동문제에 대해서 잇따라 연구결과를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고용'을 주된 과제로 한다는 점에서 한은도 갈수록 이 문제를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다는 평가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지난 7월 '설비자본재 기술진보가 근로유형별 임금 및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6일 '한국과 일본의 청년실업 비교분석 및 시사점'까지 모두 10편의 임금 및 노동관련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 10월 이후에만 8편이 집중됐고, 다음주에도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등 올해 안에 5편 정도를 추가로 발표할 예정이다.

한은은 법적으로 '물가'와 '금융안정'을 활동의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다.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한은법 제1조 1항)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한은법 제1조 2항)고 명시해 고용이나 임금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한은이 올해 이처럼 무더기로 고용과 임금, 노동시장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내놓은 데는 이유가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은의 목적에 고용안정을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관련 법 개정안도 제출된 상태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고용안정에 집중하고 있는 현실도 반영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한은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서 의원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저성장과 생산인구 감소 시대에 중앙은행의 목적과 통화신용정책의 정책결정 거버넌스에 고용의 안정과 확대를 충분히 고려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광범위한 영세자영업자와 비자발적인 불완전 실업자를 포함하는 기준으로 합리적인 정책목표를 설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은이 고용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면서 이러한 흐름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이주열 총재가 올해 금통위 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이나 각종 공개·비공개 자리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중 하나가 '최저임금' 등 임금·노동현안이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는 저출산 고령화를 주제로 10여편의 보고서를 냈다"면서 "올해는 고용을 주제로 보고서를 내기로 해 그 일환으로 보면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은의 노동·임금 관련 입장은 여전히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총재만 해도 올 들어 최저임금과 관련해서 4~5차례 공개적인 언급을 했지만 두루뭉술하다. 지난 8월 금통위 회의후 기자회견에서도 "최저임금도 비용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인데 그것이 얼마나 줬는지, 다른 요인보다 우세한 요인인지 하는 판단은 내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은이 지난주 내놓은 '최저임금 조정이 고용구조 및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도 "기존의 선행연구와 다른 자료와 연구방법으로 최저임금이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에서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했지만, 여전히 정책결정의 판단 자료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보고서는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노동자의) 비율이 10%p 올라가면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6.8%p 늘어나고, 월평균 노동시간은 23시간 줄어든다"거나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노동자가 10%p 상승하거나, 최저임금이 10% 상승하면 물가가 2% 오른다"고 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수 감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이나 정책당국이 가장 필요한 부분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의 증감 여부이다. 구체적이고 계량화된 보고서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은 고위관계자는 올해와 내년 최저임금이 대폭 올랐을 때 고용에 미친 영향을 계량화하면 의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최저임금과 고용의 연관성에 대한 공신력있는 연구결과는 필요하고, 한은이 지금도 하고 있는 과제"라며 "다만 올해와 내년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된 이후 고용이 실제 어떻게 변동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상관관계를 계량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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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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