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고령화시대에 맞는 고용시스템 필요

노동시장 가장 큰 문제는 대·중소기업 이중화

'동일노동동일임금' 왜 하청업체에는 적용않나

공공부문 차등임금인상, 대기업은 상생분배 노력

"저성장과 고령화 등 사회경제환경 변화에 맞는 고용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사진 이의종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고용시스템은 과거 고도성장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배 원장은 특히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간 분절화와 이중화'을 꼽고 경제민주화를 통한 대기업-중소기업의 불공정 개선, 중소기업 현장 혁신을 통한 격차해소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영국 워릭대학에서 노사관계와 산업경영학을 전공한 배 원장은 2000년부터 노동연구원에서 노동문제와 고용정책 등을 연구해온 노동전문가다. 올 1월 노동연구원장으로 임명됐다.

배 원장과의 인터뷰는 6일 내일신문에서 진행됐다.

■올해 고용이 좋지 못했는데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내년 전망은 어떤가.

2010년대(2011~17년) 들어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3% 미만이었고, 앞으로도 3% 이상의 경제성장은 쉽지 않다. OECD 회원국들의 2010년대 평균 경제성장률은 1.87%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저성장 시기에 연간 30만명씩 일자리가 늘어나길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보면 우리경제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점차 기술·자본집약적 산업으로 바뀌어 왔기 때문에 성장을 해도 과거처럼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지 않는다. 또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 증가가 느려지면서 과거에는 1년에 32만~37만명 늘어났으나 올해는 25만명 선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생산가능인구 증가가 줄면서 신규 취업자 수도 감소하게 된다. 조선과 자동차산업 등 제조업의 구조조정과 제조업의 가동률 저하도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하다. 최저임금 인상도 우리나라의 자영업과 영세소기업이 비대화돼 있다 보니 일부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대부분 연구기관들이 내년 일자리 증가규모를 10만~20만명 정도로 예측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도 내년 12만9000명 가량의 일자리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 최대 52시간 근로제에 따른 기업부담을 줄이기 위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려는 것을 놓고 노조가 반발하고 있는데

지금도 노사가 서면합의하면 3개월 단위로 평균 52시간, 최대 주64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주 최대 52시간 근로제 도입 전에는 탄력근로제를 활용하는 곳이 3.4%밖에 안됐는데 최근 조사해보니 12%로 늘었다. 노동시간이 줄면서 탄력근로제를 활용할 필요성이 늘어난 것이다. 냉장고, 에어컨 공장처럼 계절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과 납기가 가까울 때 좀 더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 제조업 등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3개월로는 부족해 6개월로 연장해달라는 업종들이 적지않다.

노동계에서는 장기간 노동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데 타협할 방안이 있다. '1일 연속 휴식시간' 제도다. 하루 24시간 중 11시간은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노동 규제가 강한 유럽의 경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4개월이지만 협의에 따라 6개월,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데 11시간 휴식을 보장해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있다.

연장근로 수당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사실 해당되는 사업장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수요가 몰릴 때 집중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어서 수당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선 보상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고 본다. 차분히 앉아서 논의하면 충분히 타협할 수 있는데 지금 노사 간, 노정 간 탄력근로제 문제가 너무 정치화된 것 같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산업ㆍ업종별 위원회를 설치해 달라는 주문이 주로 노사로부터 10개 이상이나 된다. 각 산업ㆍ업종별로 노사정 사회적 대화 요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전국수준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올라오면, 정치화돼서 대화를 가로막는 요인들이 있다. 정부나 국회, 노동계, 사용자측이 상대방을 향해 너무 '고공전'을 벌이지 말고 업종이나 산업별 수준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갖고 공식, 비공식 대화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최근 광주형 일자리가 타결 직전까지 갔다가 현대차와 노조 반대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는데

안타깝다. 자동차산업이 유지되려면 완성차 부문에 투자가 돼야 하는데 현재 비용구조에서는 쉽지 않다. 기존 생산이나 고용모델로 투자하기가 어렵다면 새로 투자할 기회를 찾아야 하지 않겠나. 광주형 일자리는 주 44시간 근로에 연봉 3500만원 수준으로 현재 완성차 임금수준에 비하면 크게 낮지만, 그렇게 나쁜 일자리라고 할 수는 없다. 자동차업계가 완성차업체는 임금이 높지만 1차, 2차 협력업체로 내려가면 급격히 줄어든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왜 완성차에만 적용하나. 같은 자동차산업이고 같은 성격의 라인작업을 하는 여러 하청회사들에도 적용해야 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광주형 일자리에만 낮은 임금을 문제삼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 독일이나 미국에서도 완성차와 부품하청업체 임금이 우리나라처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광주형 일자리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으나 어떻게 하든 이번 기회를 살려나가야 한다. 아울러 자동차산업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투자와 생산, 고용모델이 어때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중소기업의 격차가 심각한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간 분절화와 이중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극격차와 차별대우보다 더 심각하다.

우선 대기업과 수직종속적인 하청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이 적정 이윤 이상 '지대'를 가져가기 때문에 임금을 더 주고 싶어도 못한다. 대ㆍ중소기업의 원하청간 불공정한 거래관계를 개혁하지 않으면 최저임금 인상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원하청구조에 편입돼 있지 않은 중소기업의 경우엔 공정이나 물류를 합리화, 호율화하고 생산성, 품질을 높이는 현장혁신을 해야 한다. 현장에서 혁신할 수 있는 게 많다. 일본에서는 그걸 '현장력'이라고 한다. 같은 제품을 만들어도 디자인도 깔끔하고 흠결 없이 품질을 좋게 만든다. 이처럼 중소기업이 밑으로부터 대기업과 격차를 줄이고 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이 높아지면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스마트공장의 확산을 통한 자동화, 지능화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어느 지역에 어떤 특정제품이나 업종의 자영업이나 소기업들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는 집단적으로 특화되고 전문화된 발전이 필요하다. 이탈리아에서는 같은 업종의 소기업들이 지역별로 모여 제품을 개발하고, 브랜드를 만들며, 시장개척과 교육훈련 등을 공동으로 하면서 특화·전문화 전략을 통해 틈새시장의 공략하고 있다. 우리도 자영업과 소기업들의 지역적 특화·전문화를 통해 집단적으로 진화,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기업 안에서만 적용되는데 기업을 넘어서 적용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각 직종, 직무별로 숙련직무급이 만들어져 표준화되고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노동에 대해 같은 임금을 지불한다는 건 기업 수준을 넘어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같은 일을 해도 대기업은 많이 주고 중소기업은 적게 준다.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직무등급제가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포용국가를 제시했다. 노사관계도 87년 대립관계에서 포용적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과거 고도성장기와 비교해 사회경제적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보다 개방됐고, 기술도 빠르게 들어오고 노동력도 고령화되었으며 여성들의 사회진출도 크게 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시스템은 과거에 만들어진 게 많이 남아 있다. 고용 관련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고령화됐는데 50대 중반에 퇴직을 하니 자영업으로 몰리는 문제가 생긴다. 앞으로 정년을 더 연장해야 하고 동시에 승진, 승급도 늦춰야 한다. 퇴직 때까지 근무하려면 대졸자들도 과장으로 퇴직할 각오를 해야 한다. 사회경제 환경에 맞는 고용시스템, 고용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전문가로서 노사와 정부에 고언을 한다면

우선 공공부문은 민간 노동시장과 비교해 생애임금이라는 면에서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임금을 깎지는 못해도 숙련, 직무, 책임성 등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아온 공공부문의 고임금 직종에 대해서는 연공주의를 개혁하고 낮은 임금인상 등을 통해 기득권을 나눠야 한다. 그럴 때 연대가 가능하고 노동시장의 불공정을 개선할 여지가 생긴다.

노동계 힘만으로는 안된다. 하청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어떻게 되건, 산업생태계가 파괴되던 말건 자기기업이나 그룹 중심으로 경영해온 대기업도 노동시장 분절화의 책임이 있다. 대기업이 원하청 상생분배구조를 마련하는데 나서야 한다. 또한 대기업들도 아웃소싱 전략에 치중하기보다 중소기업과의 임금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를 정부, 노동계 이상으로 고민하고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가 그동안 혁신성장을 내세웠지만 중소기업 혁신을 위한 계획은 빠져 있었다. 이런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내년도 연구원의 중점 연구분야는

우리 경제, 특히 주력 제조업이 잠재적인 위기다. 제조업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데 인적 능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가 중요하다. 인력이 핵심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관련 연구기관들과 함께 인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려 한다. 아울러 앞서 얘기한 중소기업의 혁신을 정책화하는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창간 25주년 특별기획 - 국책연구기관장에게 듣는다] 연재 기사

김종필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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