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사태로 본 갈등원인

올해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후베이성 우한시의 한 메모리칩 공장을 방문했다. 하얀색 실험실 가운을 입은 시 주석은 컴퓨터칩을 인간의 심장에 비유하며 "아무리 덩치가 큰 사람이라도 건강하고 강한 심장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말은 미중 무역전쟁의 진짜 이유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온라인매체 '제로헷지'의 11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간 충돌은 첨단 기술에 대한 샅바싸움이다. 점차 신냉전으로 증폭되고 있다. 중국이 인공지능(AI) 등 차세대 기술의 리더국가가 되려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최첨단 칩을 디자인하고 제조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시 주석이 해당 분야에 최소 1500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공언한 배경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5일자 기사에서 "컴퓨터칩 또는 반도체가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 싸움터"라며 "하지만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부문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무역전쟁을 벌이던 미중 양국은 최근 90일간 휴전키로 했다. 동시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중국 화웨이 CFO가 미국 측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체포됐다. 미국은 핵심 기술에 대한 수출통제를 강화할 계획이다. 컴퓨터 칩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설비와 부품 관련 기술이 최우선 고려되고 있다.

이는 중국에게 커다란 타격이다. 4120억달러에 달하는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이 단 6곳의 칩 설비 회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3곳 기업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 회사들은 칩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곳이다. 미국이 이 부문을 수출 통제한다면 중국은 칩 디자인에 필요한 도구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증권정보그룹인 '아레테 리서치' 설립자인 브렛 심프슨은 "주요 칩 제조 설비 기업이 없다면 중국은 반도체 시설을 지을 수 없다"며 "총 없이 전쟁에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100전 100패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해외 의존도를 보면 지난 1년 간 반도체 부품 수입액은 3000억달러가 넘었다.

'미국을 따라잡으라'는 중국 정부의 후원을 통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칩 디자인과 테스트, 조립 등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인텔의 후원을 받는 칭화유니그룹이나 캄브리콘 테크놀로지, 화웨이의 반도체 제조사 '하이실리콘' 등 중국의 민간, 국영 기업들은 이미 인공지능을 적용한 최첨단 반도체 칩 디자인에 착수했다.

하지만 FT가 지적하듯, 진짜 어려움은 칩을 디자인하는 게 아니다. 칩을 만드는 게 정말 어렵다.

반도체 관련 컨설팅 기업인 VSLI리서치 대표 리스토 푸하까는 "디자인의 관점에서 중국 기업들은 전 세계 어느 곳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며 "하지만 최첨단 칩을 만드는 것은 이를 뛰어넘는 매우 어려운 도전과제"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기술강국을 목표로 한 '중국제조 2025' 계획에서 컴퓨터칩을 자급자족하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다. 하지만 중국 반도체 공장이 따라잡으려 노력하지만, 제조 전담 '파운드리'에 장비를 대거나 업그레이드할 때 선택지가 거의 없다. 이유는 지난 10년 간 인수합병으로 남아 있는 관련 장비 제공업체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기업은 네덜란드의 ASML이다. 실리콘 웨이퍼 위에 디자인을 입히는 사진 석판술 기계를 만드는 곳이다. 7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크기의 프로세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극자외선(EUV) 석판인쇄 기계'를 판매하는 유일한 업체다.

미국 업체인 '램 리서치'와 '어플라이드 머티어릴즈', 일본 기업인 '도쿄 일렉트론'은 트랜지스터와 기타 부품 수십억개를 단 1개의 칩에 삽입할 수 있는 장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또 다른 미국 업체인 'KLA 텐코'는 반도체 칩의 품질을 시험하고 관찰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이들 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중국 소재 리서치기업인 '게이브칼 드래고노믹스'의 애널리스트 댄 왕은 "어플라이드 머티어릴즈, 램 리서치, KLA 텐코와 같은 회사들은 지난해 전체 매출 가운데 10~20% 정도를 중국에서 올렸다. 올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중국 시장은 거대하고 계속 성장하는 곳으로, 이들 기업은 지나치게 제한적인 미국의 수출 통제를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무역전쟁이 격화돼 중국이 미국을 기술적으로 따라잡지 못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현행 미국 법에서 반도체 장비, 부품에 대한 미국의 수출 통제는 파운드리를 갖고 있는 100% 중국 기업은 물론 중국 내에 파운드리를 운영하는 삼성이나 인텔 등 외국계 기업까지 미국 기업의 장비와 부품을 살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워싱턴 소재 로펌인 '호건 로벨스'는 "수출 통제 개념은 전 세계에 있는 중국 기업이든, 또는 중국 내 있는 어떤 기업이든 기술 유출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수출 통제는 미국계 기업을 넘어 영향을 미친다. 반도체 관련 산업은 고도로 전문화된 통합적 공급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ASML의 전직 경영진은 "ASML은 어플라이드 머티어릴즈 등과의 협업 없이는 사업을 꾸릴 수 없다"며 "수출 통제로 미국 기업이 빠진다면, 중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담 기업)도 일을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VSLI리서치 푸하까 대표는 "ASML과 어플라이드 머티어릴즈 등 이름난 업체들은 반도체 연구와 개발, 영업 등에서 40년 이상 노하우를 축적한 곳"이라며 "반도체는 돈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식기반 산업이다. 지식기반은 움직이지 않는다. 중국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은 천천히 따라잡고 있다. 중국 기업 일부는 자체적으로 반도체 칩 제조 설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중 선두기업은 상하이에 위치한 AMEC다. 28나노미터 크기의 칩에 필요한 웨이퍼 제조와 조립 설비를 만든다. '상하이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 이큅먼트'(SMEE)는 칩에 새겨넣는 석판인쇄 장비를 만든다. 중국 국방기업인 CETC는 올해 8월 28나노미터 크기의 이온 임플란팅 기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중국의 진전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는 7나노미터 크기의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설비와는 여전히 간극이 크다. SMEE가 만드는 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15년 전 만들어 팔던 것이다. 현재 스마트폰에 삽입되는 반도체칩의 크기는 14~16나노미터 정도다. 중국이 만들 수 있는 최소 크기는 여전히 28나노미터에 머물러 있다.

만약 미국이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한다면, 중국 공장들은 그동안 어렵사리 축적한 산업 경험을 놓치게 될 것이다. 아레테 리서치의 설립자 심프슨은 "이는 이중악재"라며 "장비를 설치할 수도 없고, 가까스로 설치했다 해도 운영 노하우를 알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뒤처진다고 포기할 중국이 아니다. 미국의 수출 통제가 가해진다면, 중국 공장들은 저사양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산업용 로봇이나 전자장비에 쓰이는 아날로그 칩이다.

오히려 미국의 과도한 공세가 역효과를 부를 위험도 있다. 중국이 완전히 자족적인 체제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수출 통제가 장기적으로 주는 역효과는 중국이 반도체 칩의 설계와 제조, 조립 등 모든 단계에서 처음부터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게이브칼 드래고노믹스의 왕 애널리스트는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반도체 발전을 지연시키겠지만,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미국이 통제를 세게 가할수록 중국은 반도체를 스스로 만들려고 사력을 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자금력에 대한 단순한 질문으로 귀결될 수 있다. 중국이 문제 해결을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면, 해결책은 쉽사리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의 국방력과 대등하게 되는 것을 넘어 능가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수석투자 전략가인 마이클 하넷은 "미국과 중국이 올해 벌이는 무역전쟁은 새로운 군비확장 경쟁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군비경쟁의 첫 번째 싸움터는 양자컴퓨팅이나 인공지능, 초음속 전투기, 전기자동차, 로보틱스, 사이버보안 분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시점에서 미국이 중국의 기술 발전을 지연시키는 전략은 최선이라 여겨질 수 있다. 무적이라 여겨지던 미국은 서서히 그러나 뚜렷하게 기술적 선도성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로헷지는 "미국이 단기전에서 승리할지 모르지만, 중장기 전쟁에서는 중국이 유리하다"며 "우선은 무역이나 기술전쟁이지만 결국 실탄을 주고받는 전쟁에서도 중국이 우세를 가져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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