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여고보 학생이동부에 장매성 등 퇴학 38명ㆍ제적 9명 기록 남아 … 올해 포상기준 바뀌어 서훈 가능성

1929년과 1930년 일제하 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을 당한 광주여고보(현 전남여고) 학생들의 명단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첫 공개된 독립운동 참여 ‘학생이동부’ | 광주여고보(현 전남여고) '학생이동부'에 기록된 사람은 모두 47명이다. 광주지역 1~2차 시위와 백지동맹에 참여해 퇴학을 당한 광주여고보 학생 38명과 제적당한 9명의 명단이 포함돼 있다. 자료제공=광주학생독립운동여학도기념역사관


이들은 그동안 '3개월 이상 옥고를 치른 사람'이라는 정부포상기준 때문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6월부터 '퇴학당한 경우'도 포상기준에 포함돼 앞으로 서훈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13일 전남여고 광주학생독립운동역사관에 보관돼왔던 '학생이동부'(사진)가 처음으로 내일신문에 공개됐다. '학생이동부'는 재학 당시 전·출입 등 변동사항을 기록하는 문서로 학적부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

'학생이동부'에 기록된 사람은 모두 47명이다. 광주지역 1~2차 시위와 백지동맹에 참여해 퇴학을 당한 광주여고보 학생 38명과 제적당한 9명의 명단이 포함돼 있다. 이 문서에는 이름과 일시, 사유, 학년이 기록돼 있으며 교장·교무·담임·서무 란에 서명이 있다.

퇴학생 중에서는 댕기머리 사건의 3인 중 1명인 이광춘씨가 1996년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포장을 받았다. 이씨는 1930년 1월 9일 광주여고보에서 일어난 백지동맹을 주도한 인물이다. '제적생' 중에는 유일하게 윤오례씨가 올해 11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 가운데 퇴학생 26명과 제적생 8명은 아직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나주통학열차 댕기머리 사건의 주인공인 박기옥씨도 포함돼 있다.

나머지 11명은 당시 '소녀회'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다. '소녀회'는 장매성과 박옥련·고순례·장경례 등이 결성한 학교단위 비밀결사조직이다. '학생이동부'에는 장매성씨가 1930년 3월 29일 퇴학을 당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다른 10명도 퇴학명단에 포함돼 있다.

'소녀회'는 당시 광주지역 남학생 독서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학생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이 사건으로 장매성은 징역 2년, 나머지 10명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소녀회 관련자 중 암성금자씨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전남여고는 자체적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 유공자 명단을 만들어 1954년부터 1972년까지 이들 47명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강정란(61) 전남여고 교장은 "매년 학생독립운동을 전개한 선배들의 용기를 기리기 위한 역사주간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내년에는 당시 독립운동을 하다 퇴학당한 분들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남여고는 1928년 지어진 본관(광주시 지정기념물 제26호)을 2011년부터 역사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교정에는 1959년 세워진 광주학생독립운동 여학도 기념비가 있다. 당시 기념비 모금에는 전국 1128개교가 참여했다.

1929년 11월부터 1930년 3월까지 전국 320개교에서 일어난 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6.10만세운동과 함께 3대 항일운동으로 꼽힌다. 하지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212명에 불과해 서훈의 '사각지대'로 지목돼왔다. 국가보훈처는 올해부터 내년까지 학생독립유공 참여자 발굴을 위해 광주여고보 등 전국 55개교 학적부를 전수 조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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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국진 홍범택 기자 durumi@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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