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 지음 / 김명남 옮김 / 반비 / 1만7000원

도대체 이 길이 어디로 안내할지 얼마나 험할지 언제 끊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길의 운명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길 잃기는 패닉 자체다. 물리적 길 잃기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길을 전혀 잃지 않거나 길 잃는 방법을 모른다면 사는 것이 아니다. ‘월든’에서 데이빗 소로는 말했다. 우리는 길을 잃고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이 대목을 인용한 저자 리베카 솔닛은 이렇게 해석한다. 온 세상을 잃으라. 그 속에서 길을 잃으라. 그리하여 네 영혼을 찾으라.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로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작가 리베카 솔닛이 에세이를 냈다. ‘길 잃기’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가지고 발터 벤야민, 페르세포네, 할머니들, 버지니아 울프, 에드거 앨런 포,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넘나들며 자신의 내면풍경을 밀도높은 언어로 옮겼다.

한 호흡에 쓴 듯 매끄러운 솔닛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다 보면 그녀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거기서 어떻게 길을 잃었는지, 그래서 어떻게 지금의 그녀가 됐는지 찬찬히 훑는 느낌이다. 마구 쏘다니던 유년기, 사막을 닮은 남자를 사랑한 청년기, 이민자 출신의 디아스포라 감성이 만들어지는 배경이 된 가족 이야기는 물론 그녀가 읽고 보고 느낀 온갖 예술작품과 자연의 아름다움까지 모두 담겨 있다.

작가 정여울은 이 책에 대해 “어떤 책은 이 작가가 지닌 감성의 엔진이 여기 다 모여 있구나 하는 은밀한 발견의 기쁨을 주는데 바로 그런 책”이라고 평했다.

좋은 에세이가 그렇듯 솔닛이 들려준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는 어느덧 우리들의 이야기가 된다. 인생이란 원래 길 잃기이자 방랑이 아니던가, 과연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그러려면 우리는 길을 잃어야 하는 것 아닐까. 솔닛이 펼쳐 보이는 길 잃기 지도 속에서 솔닛과 함께 헤매다 보면 이상하고도 먼 곳에 버려진 느낌과 함께 길 잃기의 기쁨을 얻게 된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김형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