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근 대한상공회의소 기업환경조사본부장

우리나라 60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넘고, 1인가구 비율이 30%에 육박했다. 이런 수치상의 변화를 체감하기 힘들다면 인구 변화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살펴보자.

급속한 고령화는 노인정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농촌에서는 손자를 여럿 둔 부녀회장이 새댁으로 불리고, 65세 어른이 청년회 회원으로 활동한다. 80세 이상만 출입이 허용되는 경로당이 있을 정도다. 소비자가 변하니 기업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대표적 고령산업인 장례식장은 10년 사이 2배 수준으로 늘어난데 비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예식업과 산부인과의 불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급속한 고령화, 1인가구 증가와 4인가구 감소

가족 구성도 달라지고 있다. 가장 도드라지는 경향은 연령, 성별을 불문한 1인 가구의 증가다. 1980년 5% 미만이던 1인 가구 비중은 2017년 28.6%까지 늘어났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여겨졌던 4인 가구는 17.7%로 줄었다. 덕분에 다채로운 싱글라이프를 소개하는 ‘나혼자산다’와 ‘미운우리새끼’와 같은 TV 프로그램이 큰 인기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혼밥, 혼술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도 전과 다른 모습이다.

소비 주체인 인구의 양적, 질적 변화가 소비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다. 기업에서도 무엇이 어떻게 바뀌는지 잘 파악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고령인구와 1인가구의 증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베이비부머(1955~63년생) 세대의 은퇴와 더불어 고령화가 우리사회에 가져올 변화는 더욱 현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양으로 압도하는 이들은 이전 세대의 고령인구와 구별된다. 가치관과 기대수준이 다양하고 무엇보다 이전세대에 비해 경제적 여유가 있어 향후 소비패턴의 차별화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싱글족을 공략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1인 가구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는 물론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도 만족시키는 가치소비에 관심이 높다. 본인의 재미와 만족을 위해 외식, 여행, 문화생활, 쇼핑, 취미 등에 있어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의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분야도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간편식, 소포장 식료품은 물론이고 배달음식을 비롯해 가사노동이나 잡무를 대신해주는 서비스가 각광받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구매방식을 살펴보면 소비자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채널로 이동하는 흐름이 크게 눈에 띈다. 편리성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IT기술에 익숙한 고령인구가 늘면서 온라인쇼핑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AR·VR 등 신기술을 활용하여 고객과 시장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오프라인 채널도 온라인이 대체할 수 없는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쇼핑 이외에 차별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등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쇼핑에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가미한 복합쇼핑몰이 대표적인 예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대표되는 한국의 인구변화는 그 속도와 규모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본이 고령화사회(고령인구 비중 7%)에서 고령사회(고령인구 비중 14%)로 진입하는데 24년이 걸린데 비해 우리나라는 불과 17년만인 2017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만큼 인구변화가 우리사회에 야기할 충격은 가늠하기 힘들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채널로 이동하는 흐름

과거에는 높은 출산율과 젊고 풍부한 노동력이 소비와 성장을 추동하는 강력한 엔진이었다면 지금의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는 오히려 시장축소를 야기하는 변수로 작용될 수 있다. 때문에 인구변화는 경제성장의 순풍보다는 역풍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고대 로마 철학자인 세네카의 명언 중 ‘어느 항구로 가는지 알지 못하면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역풍과 순풍은 준비 여하와 대응정도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인구변화가 초래할 게임의 법칙을 주도할 수 있다면 직면한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박재근 대한상공회의소 기업환경조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