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네다 마사시 엮음 / 조영헌·정순일 옮김 / 민음사 / 2만원

역사학자들은 서양사회 발전의 기점을 대부분 대항해시대로 잡고 있다. 이런 논리에는 '바다로 진출한 서양과는 달리 문을 걸어 잠근 동양은 결국 뒤처지고 말았다'는 주장이 쌍둥이처럼 뒤따른다. 이런 오랜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 책이 출간됐다. '바다에서 본 역사'는 바다를 육지와 동등한 역사의 공간으로서 조망한다. 지난 700년간 동아시아 바다에서 펼쳐진 역동적인 드라마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추적한다. 현재의 동아시아 세계와 그 흐름을 만들어 낸 토대가 바다에서 비롯되었음을 설명한다.

저자들은 동아시아 바다를 세 시기로 나누어 서술한다. 먼저 '열려있는 바다(1250~1350년)'의 시대다. 당 제국 시절부터 중국의 대도시와 항구는 바다를 건너온 상인과 사절, 승려로 붐볐다. 13세기에 등장한 몽골(원)은 동아시아 바다가 지닌 개방성을 더욱 강화했다.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제국이 탄생하면서 바닷길 또한 전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됐다. 이탈리아 마르코 폴로와 모로코 이븐 바투타는 이 시기에 중국을 여행하면서 세계 최대의 항구인 천주의 번영에 관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두번째 시기는 '경합하는 바다(1500~1600년)'다. 16세기 동아시아 바다는 격변의 장이 된다. 명 제국의 해금(海禁) 정책과 조공 체제가 흔들리면서 전통적인 질서가 무너진다. 이런 가운데 유럽인들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올랐다. 1571년에는 에스파냐가 필리핀에 마닐라시를 건설하면서 멕시코 아카풀코와 연결하는 태평양 항로가 탄생한다. 저자들은 지구 전역을 연결하는 무역이 시작되면서 나타난 경쟁의 양상에 주목한다.

세번째는 '공생하는 바다(1700~1800년)'다. 명이 청으로 교체되고,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가 성립한다. 강성해진 청은 대만을 점령한다. 에도 막부는 오키나와의 류큐 왕국을 복속시킨다. 하지만 류큐 왕국은 이를 감추고 중국에 계속해서 조공을 바친다. 일본은 류큐 왕국이 중국을 상대로 조공 무역을 하면서 얻는 이득을 노렸던 것이다. 여러 정황을 볼 때 청도 류큐 왕국이 일본에 복속됐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류큐가 고개를 숙이는 한 굳이 그 사실을 들추어내려 하지 않았다. 이처럼 실리를 중시하는 자세는 국가 간 무역에서도 발견된다. 조선과 일본은 큰 전쟁을 치렀는데도 쓰시마를 매개로 교류를 지속했다. 나가사키를 방문한 청의 상인들에게 일본이 무역 허가증인 신패를 발급받으라고 요구했을 때도 청은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정식 국교가 없었지만 명분을 크게 해치지 않는 한 무역에서 얻는 이득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 책에는 도쿄대학 부학장인 석학 하네다 마사시를 비롯해 소장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스물여덟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약 3년간에 걸쳐 모임을 거듭한 끝에 각자가 전공하는 한국사와 중국사, 일본사, 베트남사, 류큐사, 대외 관계사, 해역 아시아사, 회화사, 문학사, 문화사, 고고학, 군사기술 교류사 등을 아우르는 통섭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특히 한국어판의 번역에는 고려대 역사교육과 조영헌 교수와 정순일 교수가 참여해 완성도와 전문성을 높였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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