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법률사무소 이보라 변호사

새 학기를 맞이한 고등학교 2학년 김현우(가명)는 짝이 된 서명호(가명)와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명호는 현우의 친절함을 만만하게 여기고 어떠한 이유도 없이 연우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현우는 폭행과 욕설이 오랜 기간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고, 같은 반 학생과 다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최대한 명호를 피해 다녔다.

명호의 폭력의 강도는 나날이 거세졌다. 명호는 입에 담을 수 없는 패륜적인 욕설을 하고, 신던 양말 냄새를 강제로 맡게 하는 등 현우에게 신체적 상해를 가하고, 치유되기 힘든 정신적 상처를 주었다. 급기야 현우는 명호의 심한 폭행으로 뇌진탕을 입기도 했다. 견디지 못한 현우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현재 현우는 대인기피 등의 증상을 보이며 타인과의 대화를 단절한 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소년법, 피해자에게 보호소년 처벌 공개안해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왔고 누구보다도 밝고 쾌활했던 현우가 몇 달 만에 이 같은 상황에 처해진 데 대하여 놀란 나머지, 부모는 상해 등의 혐의로 명호를 고소했고 미성년자인 명호는 ‘보호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소년재판부로 보내졌다. 보호소년에 관한 심리와 처분은 비공개로 진행되고(소년법 제24조 제2항), 결정문 역시 비공개다. 이후 현우와 그의 부모는 보호소년의 처벌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호소년이 재판과정에서 어떠한 내용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소년법은 피해자가 의견진술을 신청할 때에는 ‘진술권’을 주고(소년법 제25조의 2),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화해를 권고한다(소년법 제25조의 3). 다만 이와 관련하여 절차에 출석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허가가 필요한데, 허가 신청은 대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법원에서는 현우의 부모에게 한차례 전화를 걸어 현우의 상태가 어떤지를 물어봤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지나고, 보호소년의 처분이 어떻게 났는지 법원에 확인 전화를 걸어야만 했고, 법원에서는 단지 몇 주 전에 처분이 났다는 사실만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어떠한 처분을 받았는지, 보호소년의 어떤 변명이 그 처분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알려줄 수 없다고 하였다.

소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친구로부터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했고, 지독한 욕설을 들어 결국에는 학업을 포기하기까지 했던 현우에게 법이 베풀 수 있는 온정은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미성년자가 가해자인 숱한 강력 사건들이 사회면을 도배하고 있고 피해자의 대부분이 미성년자인데도 소년보호사건의 절차가 피해자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어 소년법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에 선 법’이라는 항의를 받고 있음에도, 피해자의 보호와 회복은 요원하기만 하다. ‘보호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 심리 내용은 물론이고 심리 기일이 언제인지조차도 알 수 없는, 마치 사건과 무관한 제3자와 다름없는 처지인 것이다. 소년보호사건이 비공개될 필요가 있다고는 하지만, 피해자의 알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부분이다.

법무부, 피해자의 재판참여 권리 확대 발표

지난해 12월 법무부에서는 향후 5년간 우리나라 청소년 비행예방정책의 청사진을 담은 '제1차 소년비행예방 기본계획(2019~2023)'을 발표하면서, 소년보호사건 심리에 피해자와 그 법정대리인이 참석하고 심리결과를 통지받을 수 있도록 피해자의 재판참여 권리를 확대하고, 소년보호사건의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에게 사건의 심리개시여부·심리결과 등을 통지하는 절차를 마련할 계획임을 밝혔다. 뒤늦게나마 소년사건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어느 정도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 환영할만한 조치이다.

현우는 명호로부터 아직까지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 현우의 부모에게 전화해‘애들끼리 친해지다 보면 장난도 치고 그럴 수도 있지 왜 유난스럽게 그러느냐.’는 명호 엄마의 말이 마지막이었다. 현우의 굳게 잠긴 방문은 언제쯤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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