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재개 의지를 드러냈다. 자신의 측근을 통해 한국당 전당대회 주요주자에게 '배신자' 낙인을 찍었다. "나를 배신한 자여, 나의 칼을 받아라"는 식이다. 최순실과 함께 저지른 국정농단으로 보수와 한국당을 벼랑끝에 내몬 박 전 대통령이 반성과 참회 대신 다시한번 '상왕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이전부터 '강한 영향력을 가진 전직 대통령'을 꿈꾸며 후계자 양성과 총선 공천에 혼을 쏟았다.

아이돌 팬클럽보다 더 강한 충성도를 자랑하는 맹박(맹종적인 친박)은 박 전 대통령을 앞세워 십수년간 기득권을 누려왔다. 공주님만 잘 떠받들면 금뱃지를 달 수 있었고, 장관을 챙겼고, 하다못해 재벌돈을 지원받아 배를 불릴 수 있었다. 이들에게 보수의 가치 따위는 관심없는 얘기였다. 보수가 어떻게되든 말든, 박 전 대통령만 추종했고 자신의 기득권을 챙기는데 급급했다.

박근혜와 맹박이 다시 제1야당이자 보수를 대표하는 한국당을 흔들고 있다. 자신의 노력보다는 문재인정부의 실기 때문이겠지만, 당 지지율도 그럭저럭 회복세였던 한국당인데, 다시 박근혜와 맹박의 암흑시대로 돌아갈 위기다.

한국당의 위기는 자신들이 자초한 탓이 크다. 박근혜·맹박과 단절하지 못한 채 오히려 눈치를 보고 끌려왔다. 2017년 11월 박 전 대통령을 출당시키면서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도 싹 정리했어야 하는데, 아직도 그를 동정하는 특정지역·특정세력의 표를 구걸하느라 그러질 못했다. 한국당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대부분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을 극복하자는 주장은커녕 배박으로 찍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이다. 맹박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이다. 황교안 전 총리는 "태극기 세력이라고 하는 분들도 그동안 우리나라를 여기 있도록 헌신하고 봉사한 귀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대로는 안된다. 한국당의 위기는 '보수의 가치'보다 자신의 영향력과 기득권에만 관심 있는 박 전 대통령과 맹박에서 비롯됐다. 바른정당 중진의원은 "국정농단을 반성하지 않는 박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 주변에 기생하는 맹박이 한국당을 좌지우지하는 한 보수에게 기회는 없다"고 잘라말했다. 공감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기에, 건전한 보수의 부활을 기대하는 많은 국민은 한국당이 과거보다 미래로 향하길 바란다. 극단적 양극화로 해체위기에 직면한 한국사회에서 진보 이상으로 보수의 역할이 필요할 수 있다. 한국당이 살려면 이제 그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야 한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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