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영 지음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기획 / 바틀비 / 1만5900원

2018년 한 해 동안 6개 대륙, 42개 나라에서 모두 239차례에 걸쳐 BFFP(Break Free From Plastic)라는 행사가 열렸다. '플라스틱에서 벗어나자'는 이 캠페인에 약 1만명의 시민이 참여해 거리와 공원, 강과 바다 등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치우는 일에 힘을 보탰다. 이들이 모은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은 18만7851개다. 이렇게 모은 쓰레기들 가운데 상품 브랜드를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따로 모아 하나하나 개수를 세고 기록했다. 가장 많이 버려진 브랜드는 코카콜라로 모두 9216개에 달했다. 뒤를 이은 건 펩시코와 네슬레였다. 이들 3개 기업의 쓰레기가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14%를 차지했다.

평범한 시민들, 사회 문제를 해결하다

이같은 시민들의 활동은 기업의 책임을 일깨웠다. 행사에서 플라스틱 브랜드 순위 3~5순위로 지목된 네슬레, 글로벌 식품기업 다농, 제과업체 몬델레즈 인터내셔널은 2025년까지 모든 제품의 포장을 재활용 가능한 재질로 바꾸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목소리를 크게 높이거나 싸우지 않고도 폐기물을 줄이고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며 기업 운영 방식을 바꾸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낳았다.

비록 세상은 좀처럼 쉽게 좋아지지는 않지만 사회 문제에 대한 개선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기구나 정치 지도자가 나서기도 하지만 대부분 평범한 시민들이나 자원봉사자, 자그마한 단체 또는 벤처기업이 주역이다. 사회 문제를 시민 스스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지만 21세기에 들어선 그 흐름이 더욱 두드러지고 방법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기술과 네트워크, 정보의 발달이 가세하고 이전까지 각각 별개로 여겨지던 시민과 행정, 기업 간 협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을 '사회 혁신(Social Innovation)'이라고 한다. 새로 나온 책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는 세계 전역에서 이뤄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30가지 사회 혁신 실험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사회 혁신의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고 한국 사회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가상화폐 줄리엣으로 재생 에너지 관리

이 책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는 사회 혁신 현장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제1장 '도시의 풍경을 바꾸다'에서는 죽은 항구도시에 환경 유토피아를 건설한 네덜란드 데 퀘벌, 거주자우선주차제도를 공유주차제로 대체한 독산4동 등 주민 참여 모습들을 보여준다.

책 제목에 있는 '줄리엣'은 네덜란드 데 퀘벌의 도시 재생 실험에서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 화폐의 이름이다. 공동체가 지역에서 생산한 재생 에너지를 더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가상화폐다. 에너지 단위인 줄(Joule)에서 따왔다. '도시 광부'는 우리나라 독산4동에서 쓰레기 재활용을 돕는 시민들이다. 재활용과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고안된 사업의 참가자들은 시민과 행정을 잇는 가교 역할까지 하게 됐다.

3장에서는 기술이 사회 혁신에 참여하는 사례를 집중 점검한다. 첨단 기술이 아닌 '적정 기술'의 활약을 볼 수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안질환을 점검하는 장비는 적정 기술에 기반한다. 인라이튼이라는 국내 기업은 배터리를 되살려 쓰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것만으로도 대기업이 주도하는 가전제품 소비 시장 지형에 상당한 변화를 준다.

벤처기업 짚라인은 드론을 아프리카에서 생명을 구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경상도 너비만한 땅에 2017년 1인당 GDP 754달러에 불과한 르완다는 국제보건기구에 따르면 산모 사망률이 미국의 20배가 넘는다. 산모 사망률의 26%는 과다출혈 때문이다. 35개 지역 병원과 478개의 건강센터가 있지만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우간다 정부도 국제 원조기구도 아니었다. 미국의 소셜 벤처기업 짚라인은 우간다 4곳에 공급센터를 세우고 드론으로 각 의료시설에 필요한 혈액과 의약품을 실어 나른다. 한번 비행에 150km까지 날 수 있는 드론이 우간다 전역에 혈액을 공급하는방식으로 수십년 된 난제를 해결했다.

우리나라도 관심 가질 때

사회 혁신이란 용어는 아직 우리에게 낯설지만 미국과 유럽은 이미 21세기 초부터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취임하면서 백악관에 '사회 혁신 및 시민참여국'을 마련했다.

세계 금융 위기를 겪은 직후인 2009년엔 사회 혁신이 유럽연합(EU)의 정책 어젠다로 격상됐고 여러 정책과 프로그램, 기관들을 통해 정책의 주류가 됐다. 행정이 했거나 기업이 했을 많은 일들이 시민과 행정, 기업과 연구소, 온라인 플랫폼과 기술적 개선에 의해 바뀌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업에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도 규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 글로벌 임팩트 투자 네트워크(GIIN, Global Impact Investing Network)에 따르면 설문에 답한 225개 투자자들은 2017년 한해 1만1136개의 사업에 약 335억달러(약 40조원)의 임팩트 투자를 감행했다.

미국과 유럽의 이런 변화에 비하면 우리 사회의 관심은 아직 부족하다. 2017년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 사회혁신수석이 만들어지고 1년 만에 시민사회수석으로 바뀌었다. 사회 혁신과 관련된 결실은 아직 많지 않고 시민들의 참여도 적은 편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하나의 흐름인 사회 혁신에 관심을 가질 때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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