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 지음 / 두레 / 1만2800원

'3.1 혁명과 임시정부'는 3.1운동과 임시정부를 하나의 '대한민국 뿌리'로 보고 역사적 사실들을 전개했다. 저자인 김삼웅씨는 오랫동안 독립운동사와 친일반민족사를 연구한 전문가다. 현재는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는 백년'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외에도 김구 신채호 한용운 안중근 이회영 안창호 여운형 김규식 조소앙 유진오 등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을 썼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3·1 운동'을 고쳐 쓴 '3·1 혁명'이었다. 저자는 "해방 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제헌헌법 초안에서도 전문에 '3·1혁명'으로 명시했지만 한민당 계열 일부 제헌의원들이 당시 이승만 국회의장에게 3·1 혁명이 과격용어라고 전언하면서 '혁명'이 '운동'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그는 인구의 10분의 1이상이 만세시위에 참여했고 군주제 폐지와 근대적 민주공화제 전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을 들어 '혁명'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억압당해온 여성, 천민계급이 주체적으로 역사현장에 등장해 평등사회로 전환, 국민국가시대를 열었다고도 했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첫 탄핵 장면을 자세하게 기술한 부분도 도드라졌다.

저자는 "이승만의 독선적인 정부 운영과 무대책에 실망한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의정원 의원들이 대통령 중심제에서 일종의 내각책임제인 국무위원중심제로 전환하는 개헌작업을 시도하자 이승만이 반대하고는 1921년 5월 상하이를 떠났다"며 "의정원은 탄핵 발의에 앞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승만에게 전보를 보내 수습을 요청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했다"고 말했다.

임시의정원은 1922년 6월에 이승만 대통령 불신임안을 제출해 일주일간 토의한 후 6월17일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불신임안을 의결했다. 정부 수립 3년여만에 임시 대통령 불신임안이 채택된 것이다. 불신임 이유로는 △인민의 불신임 확대 △재정 임의사용 △국정 혼란 야기 △대책없는 국정운영 등을 제시했다.

저자는 경술국치부터 이야기를 풀어갔다. 1910년 황제의 서명이 빠진 병탄조약문 작성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연합군 승리로 끝나고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는 1917년 10월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천명했다. '3·1 혁명'은 세계조류와 함께 오랫동안 은밀하고 치밀하게 준비됐다. 의정원, 임시정부에서 이어진 독립의 기운은 깊고 넓게 퍼져갔다. 광복군 창설과 대일항전 준비는 일본의 패망으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저자는 마지막에 일제의 만행을 굳이 자세하게 열거하며 환기시켰다. 그는 "그들의 죄는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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