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리학살 사진·기록으로 일제 만행 고발

독립운동가 지원, 유관순 등 투옥인사 면회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위 군중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위치를 잡아야 했다. 나는 어느 일본인 가게 2층에 올라가 신을 벗을 사이도 없이 베란다로 나가 급히 셔터를 눌렀다.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만세를 부를 줄은 몰랐다. 나는 파고다 공원, 종로, 덕수궁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프랭크 스코필드와 통역사이자 그의 한글 선생이었던 목원홍. 사진 프랭크 스코필드 기념사업회

1916년 의료선교사로 내한한 프랭크 윌리암 스코필드(1889~1970)는 서울의 3.1만세운동 현장과 화성 제암리 피해 현장을 사진에 담아 전 세계에 알린 캐나다인이다.

스코필드는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릴 만큼 3.1만세운동과 독립운동을 도왔던 대표적 외국인이다. 만세 운동이 일어나기 전 거사에 대한 정보를 듣고 협력을 요청받은 유일한 외국인이기도 하다.

◆만세운동 정보 듣고 촬영 약속 = 세브란스의과대학에서 세균학, 위생학 교수로 재직하던 스코필드는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과 깊은 교류를 나눴다. 자신을 찾아와 정확한 국제 정세를 알려달라는 이갑성의 요청에 그는 외국 신문과 잡지에서 기사를 찾아 자신이 분석한 설명을 덧붙여 주는 등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이뿐 아니다. 한국에 들어온 미국, 영국인들을 찾아가 국외 소식을 자세히 물은 뒤 이를 전달하는 역할도 맡았다.

3.1만세운동 하루 전날인 2월 28일,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던 이갑성은 독립선언문을 들고 스코필드를 찾아왔다. 다음날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가 있을 것이라 알려주고 선언문 사본을 영어로 번역해 최대한 빨리 미국 백악관에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이갑성은 3월 1일 아침, 스코필드를 다시 찾아왔다. 이날 오후 탑골공원에서 대규모 학생 시위가 있을 예정이며 이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스코필드는 이갑성 요구에 기꺼이 응했고 자전거를 타고 현장을 누비며 만세운동 현장을 촬영, 실상을 해외에 알렸다.

스코필드는 제암리 학살 현장도 방문해 사진과 기록을 남겼다. 4월 17일 제암리 학살 소식을 들은 스코필드는 18일 소아마비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자전거와 열차를 갈아타며 현장을 조사했다. 이때 스코필드가 작성한 '제암리의 대학살'과 수촌리 학살 상황을 기록한 '수촌 만행 보고서'는 일제 만행과 3.1만세운동을 해외에 알린 중요한 기록이다.

3.1운동 이후에는 한국인들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일본인 고관들을 찾아가 비인도적 만행에 항의하고 언론을 통해 일제 만행을 폭로했다. 투옥된 독립운동가들도 방문했다. 서대문형무소 여자감방 8호실에 수감돼 있던 유관순과 어윤희 등을 만나 위로했다. 총독부 고위 당국자를 찾아가 감옥 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고문과 비인도적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한 것도 그였다.

스코필드는 3.1운동을 알리기 위해 일본까지 건너갔다. 그해 9월 도쿄에서 열린 극동지구 파견 기독교 선교사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신이 보고 들은 한국의 3.1만세운동을 생생하게 전했다.

◆"나는 캐나다인 보다 조선인" = 스코필드는 평소 "나는 캐나다인이라기보다 조선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힐 만큼 한국과 한국의 독립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3.1만세운동에 담긴 한국 정신을 해석, 국내외에 알린 것으로도 이름이 높다. 3.1만세운동이야말로 한국정신의 상징이며 이것이 한국 사회의 '희망'이라고 각종 언론 기고를 통해 설파했다. 3.1만세운동을 직접 경험한 스코필드는 1958년 한국에 돌아온 뒤 매년 3월 1일이 되면 당시의 회고와 함께 3.1정신을 알리는 글을 신문에 기고하며 그 정신을 이어갈 것을 촉구했다.

1969년 중앙일보에 실린 글에서 그는 "3.1운동은 외부로부터 압박에 대한 저항운동이다. 그것은 항상 외세에 부딪힌 한국정신의 상징이다. 한국인은 3.1운동과 같은 정신적 운동을 언제나 전개해야 한다. 내가 모든 친지의 만류를 무릅쓰고 한국에 온 것은 이같은 운동의 영원한 지지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운동은 참음과 사랑과 자비를 토대로 언제나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 수의학자이기도 하다. 독일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언 대학에서 명예 수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수의학회가 주는 국제수의학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말년을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수의병리학 교수로 지낸 스코필드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1960년)과 건국공로훈장(1968년)을 받았으며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치됐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스코필드 박사를 기리는 전시회를 마련했다. 오는 23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서울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열릴 예정이다. 스코필드 박사를 비롯 한국 독립운동을 도왔던 캐나다인 5명을 조명한다.

[신년기획] 100년 전 그날, 현장을 가다 연재기사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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