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돈 한푼 받은게 입증 안돼, 탄핵 동의할 수 없다" … 당 우경화 흐름과 발맞춰

2016년 탄핵 찬성 새누리당 62명, 대부분 한국당에 … 전대 뒤 당내 갈등 커질듯

황교안 전 총리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한국당 2.27전당대회에 출마한 황 전 총리는 '박근혜 탄핵'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2016년 탄핵 후폭풍으로 탈당사태까지 겪었던 한국당에 또 한번의 분열을 불지폈다는 지적이다.

◆토론회서 탄핵 작심발언 = 황 전 총리는 19일 전대 2차 TV토론회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어쩔 수 없었다'는 질문에 O 또는 X로 답변하는 과정에서 X를 들었다. 황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이 돈 한 푼 받은 게 있는지 입증되지 않았다"며 "탄핵이 타당했던 것인지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 전 총리는 "형사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절차적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객관적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지않았는데 정치적 책임을 물어 탄핵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합동TV토론회 | 19일 서울 중구 TV조선 스튜디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합동TV토론회에서 김진태(왼쪽부터)·황교안·오세훈 당 대표 후보자가 토론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황 전 총리는 "탄핵에 대한 저의 의견은 기본적으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황 전 총리는 지난달 입당 기자회견에서는 탄핵에 대한 입장을 묻자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국민통합"이라며 답변을 피했지만, 이날은 작심한 듯 "탄핵이 타당했던 것인지에 동의할 수 없다"며 입장을 명확히했다.

황 전 총리의 이날 발언은 평소 소신인 것으로 보인다. 한 친박의원은 "입당 이전에도 '탄핵은 잘못됐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물론 당내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는 태극기세력도 뒤늦게 소신을 밝히게 된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 측근 유영하 변호사가 공개적으로 황 전 총리를 비판하면서 배박 논란이 일자, 이를 무마하려는 뜻도 담겼을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탄핵찬성 71.9% = 하지만 황 전 총리의 '탄핵 발언'은 촛불민심과 국회(찬성 234명, 반대 56명, 기권 2명, 무효 7명)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킨 탄핵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어서 파장이 클 전망이다.

특히 탄핵 찬반 때문에 대규모 탈당까지 경험했던 한국당으로선 또 한차례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2016년 12월 탄핵 표결 당시 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의원 128명 가운데 62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된다. 탄핵 직후 30명이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다가 지금은 3분의 2 이상 복당하고 바른미래당에는 8명만 남았다. 탄핵 찬성파가 당내에도 최소 50명이 넘는다는 얘기다.

더욱이 탄핵에 대해선 민심도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월간조선이 지난해 12월 6~8일 리서치&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014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탄핵이 정당했다'는 응답이 71.9%였다. '탄핵은 부당했다'는 10.2%에 그쳤다.

황 전 총리의 '탄핵 발언'은 당내 상당수 의원과 민심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전대 이후 당내 분열의 씨앗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이 전대를 앞두고 극우화 양상을 보이는 것도 분열을 가속화 시킬 가능성을 높인다. 한국당 의원 3명은 5.18 망언을 쏟아냈다. 황 전 총리는 물론 김진태 의원 등 전대 출마자들은 앞다퉈 구시대적인 색깔론을 펼치고 있다. 전대 연설회장에는 태극기세력이 가득차 반대자들에게 욕설과 저주를 퍼붓고 있다.

탄핵에 동의하지 않는 황 전 총리와 극우세력이 당의 주도권을 잡을 경우 당내에는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극우화된 한국당'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는 의원들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탄핵 전후 격화됐던 당시 새누리당의 집안싸움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는 18일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한국당이 한마디로 말하면 고쳐 쓸 수 있는 정당이 아니다, 그렇게 판단을 하면,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제3지대 신당 가능성을 점쳤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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