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청소년통합지원체계 강화 … 또래상담 서비스 확대

'기관이 아닌 사람, 청소년이 중심이다.'

2월 25일 부산에서 만난 이기순(56)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이사장이 인터뷰 내내 강조한 말이다. 기관별로 분절적으로 이뤄지는 복지 서비스에서 벗어나 위기청소년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 지역사회 청소년통합지원체계(CYS-Net, Community Youth Safety-Net) 사업 강화를 위해 'CYS-Net 리디자인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마을이 아이를 함께 키워냈던 것처럼 청소년들이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맞춤 지원이 가능하도록 사회 안전망 강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이기순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이사장│고려대 사학과, 캐나다 요크대 대학원 여성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여성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여성부 권익증진국장, 2011년부터 여성가족부 가족정책관, 대변인, 여성정책국장, 기획조정실장, 청소년가족정책실장을 지냈다. 1993년 개원한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은 여가부 산하 준정부기관이다. 학교 밖 청소년, 미디어 중독 청소년 등 위기청소년 지원과 함께 청소년 정책연구 및 프로그램 개발, 상담복지 전문 인력 양성 등을 한다. 사진 이의종

■ 이사장으로 취임한지 3개월이 지났다. 여성가족부에서 청소년 정책을 담당했을 때와 또 다른 면이 있을 것 같은데.

중앙정부에서 정책을 기획하고 예산을 수립하는 일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사회에서 해당 정책들이 얼마만큼 잘 정착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사장으로 임명 받자마자 인근 지역 청소년상담복지센터들을 찾아가고 지방자치단체 및 경찰청 관계자들을 만났다. 청소년들을 되도록 많이 만나려고 한 것은 물론이다.

부산시와 함께 성공 시범 모델을 만들어 전국에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지역사회 청소년통합지원체계(CYS-Net) 안에 고위험 위기 대응팀이나 긴급 대응팀을 만드는 식으로 조금 더 가까이서 청소년을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하고 싶다. 다양한 모범사례가 나와 전국으로 해당 사례들이 전파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우리 기관은 정부가 만든 정책들이 실제 현장에서 잘 적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임기 3년 동안 지역사회에 청소년정책들이 제대로 안착되는 데 중점을 두고 싶다. 우리 기관뿐만 아니라 우리가 총괄하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 등이 청소년들이 힘들 때 친구처럼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 부산 여중생 폭력 사건 등 여러 사건들이 터지면서 CYS-Net을 강화하는 추세다.

위기청소년들은 제때 도움의 손길만 내밀어 주면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다. 지난주 지역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청소년을 구해냈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아이는 마지막으로 1388 청소년상담전화에 연락을 했고 상담사가 시간을 끌면서 경찰에 연락, 구조했다. 이후 지역의 광역 및 기초상담센터가 협력, CYS-Net 실행위원회를 열어 긴급 의료비 지원과 청소년 사례 관리자 지정, 병원 연계, 이후 지원 계획 수립 등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만큼 CYS-Net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취임 뒤 지역 청소년상담복지센터 현장 실무자들을 만나면서 CYS-Net을 기반으로 한 위기청소년 맞춤형 지원 강화 필요성을 새삼 느꼈다. 지난해말 여가부와 협력해 CYS-Net 기능 강화 방안을 찾기 위한 '리디자인 TF'를 구성했다. CYS-Net은 국가청소년위원회 시절부터 만들어진 협조체계다. 10여 년 동안 운영이 되다 보니 정보 연계가 안 되는 부분이 생기거나 지역별로 차이가 발생하는 등 보완이 필요해진 측면이 있다.

현장을 다니면서 그 동안에 이뤄진 CYS-Net 연계 시스템이 기관 중심 협업 모델로 운영되고 있다는 한계를 느꼈다. 중요한 건 기관이 아니라 사람이고 위기청소년이다. 청소년한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중심으로 기관들이 엮어져야 한다. 해서 관점부터 바꾸자고 했다.

공공성 강화를 위해 지자체와 민간과의 협업모델을 더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종전에는 지나치게 민간영역인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위기청소년 지원 업무를 맡겼다. 민간영역이다 보니 정보공유나 기관별 연계 어려움 등 여러 문제들이 있었다. 게다가 CYS-Net의 가장 핵심역할을 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의 경우 법적 지위도 명확하지 않아 어려운 점이 많다. 이런 점도 바꿔나가야 한다.

■ 폭력 등 청소년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부 등 관련 부처와 협업도 중요하다.

학교 내에서 언어폭력, 집단따돌림 등에 고통 받는 아이들을 위한 또래상담 프로그램(일정 수준의 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이 또래의 고민을 들어주고 도와줌)을 하고 있다. 1만1636개교 중 8200여 곳에서 또래상담 동아리가 운영된다. 우리 기관에서 또래상담 교사를 양성하고 학교에서 또래상담 프로그램이 잘 이뤄지도록 돕는다. 올해는 초등학교에 또래상담을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최근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저연령화가 심화되는 것처럼 학교폭력 역시 저학년에서도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보다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청소년기에 겪는 폭력 문제는 학교 '안팎'이 따로 없다. 우리는 흔히 학교폭력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아이들은 학교 '안팎' 폭력에 노출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1년에서 2017년 사이 교내 폭력은 40% 줄었지만 학교 밖 폭력은 250% 늘었다. 학교밖청소년 탈북청소년 다문화청소년들도 우리 기관의 또래상담 동아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 좋은 취지이지만 정부 산하기관 특성상 역할의 한계도 있을 것 같다.

당연히 여러 기관들과 협업을 해야 한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과 다문화청소년을 위한 지원 업무를 연계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탈북청소년 분야는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무지개청소년센터와 협업하는 식이다.

이외의 다른 기관들과 협업도 강화 중이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등과 '대한민국 미래 100년 2019 다시 청소년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여러 사업들을 함께 할 계획이다. 또한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는 국립청소년우주센터, 국립청소년농생명센터 등 여러 국립수련시설들이 있다. 우리 기관에서 진행하는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치유 프로그램을 이들 시설에서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올해 우리 기관은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과 함께 학교밖청소년을 위한 '꿈드림 올림픽'을 열 계획이다.

■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중독을 상반기 내에 질병코드에 올린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발맞춰 청소년 인터넷·게임중독 예방 프로그램을 강화할 필요가 있지 않나.

정부가 주기적으로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청소년 진단조사를 한다. 2018년 전체 조사 대상 청소년 19만명 중 과의존 위험군이 약 4만2600명이다. 미디어 과의존 위험군 청소년 치유를 위한 전문상담사들이 상담복지센터 17곳에 31명이 있다. 이밖에 우리 기관에서 양성한 상담 실무 인력이 1500여명이다. 4만명이 넘는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청소년들을 위한 치유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상담 인력 확보가 시급하다.

저연령화 되는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한 신규 프로그램 개발도 필요하다. 변화 추세가 상당히 빠른 만큼 초등 저학년생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

또한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협조가 중요하다. 과의존 위험성이 나타나도 보호자가 동의를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치유 캠프에 참여할 수 없다. 보호자들이 '이 시기가 지나면 우리 아이는 나아질 거다'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은 특히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보호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 최근 스쿨미투 등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젠더문제가 커지고 있다.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당연히 청소년 젠더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새롭게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원인부터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최근 '청소년 성혐오 실태와 대응' 방안을 위한 연구를 진행 했다. 특히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할 사항이 부모와 자녀 간의 '혐오'에 대한 인식 수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조사 대상 청소년 10명 중 9명은 혐오 표현을 듣고 심각하게 생각했지만, 부모는 10명 중 6명 정도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아이들은 유튜브, 웹툰 등 다양한 통로로 혐오표현을 경험하고 따라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부분이 있으면 해당 프로그램을 계속 보게 되는데 문제는 이를 필터링 해주는 역할이 없다는 점이다. '여혐' '남혐' 등 남녀 간 성 대결을 조장하는 편향적인 영상을 제약 없이 접하면 결국 잘못된 성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청소년의 성 혐오표현을 예방하기 위해 적극적인 부모역할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김아영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