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불문하고 '강경세력'이 주류 차지

대안 대신 비난만 난무, 정치후퇴 귀결

여야를 막론하고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좌우 극단에 가까운 강성세력이 당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다. 정당마다 강경파가 주도권을 쥐다보니 정치판은 늘 불안하다. 대안을 논의하는 정책경쟁보다 상대방을 겨냥한 저주에 가까운 비난만 난무한다. 강경파의 득세가 정치판을 깬다는 지적이다.
발언하는 홍영표 원내대표 |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강경파 어떻게 커졌나 = 한국당 2.27 전당대회는 강경일변도의 극단세력이 어떻게 세를 키우는가를 보여준 극명한 사례였다. 전당대회 연설회장을 가득 채운 태극기 당원은 중도후보나 비주류후보에 욕설을 퍼부었다. 자신과 색깔이 비슷한 극우성향 후보에 찬사를 보냈다. 이미 주류 친박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황교안 후보였지만, 태극기 당원의 눈치를 보느라 조금 더 오른쪽으로 좌표를 옮겨야했다. 논란이 된 탄핵·태블릿 피씨 발언이 나온 배경으로 꼽혔다.

최근 수년동안 정당들은 당원의 권한을 키우고 있다. 당원들이 당 지도부를 뽑고, 총선 공천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일반국민보다 이념적 성향이 강성일 수밖에 없는 당원의 입김이 어느 때보다 커진 것. 결국 정치인들은 당원의 입맛을 맞추느라, 선명성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황교안 후보가 한국당 당원으로 변신한 태극기세력을 의식해 자신의 좌표를 맨오른쪽에 찍은 것도 최근 정당정치의 흐름이 반영된 결과인 셈이다.

발언하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총선이 다가오는 것도 강경파 득세와 연관있다. 총선 공천권이 주류 강경파의 손아귀에 들어가있는 상황에서 중도 또는 온건세력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중도 또는 온건성향의 비주류가 강경 주류를 견제하기는커녕 눈치만 보게 되면서 강경 주류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갈 뿐이다.

최근 한국 정치사에서 비주류가 연신 '실패의 역사'를 쓴 것도 강경 주류의 입지를 넓혀주는 결과를 낳았다. 2016년 탄핵을 주도했던 비박은 탈당과 복당, 원내대표 경선·전당대회 패배를 거치면서 거의 유명무실해졌다. 비박이 무너지면서 강경 친박은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다. 여권에서도 2002년 '노무현 깜짝 부상' 이후 비주류가 부각된 사례가 없다.

◆여야 정쟁만 반복 = 여야 모두 강경세력이 주류로서 주도권을 쥐자, 갈수록 대화보단 대결이 앞서는 형국이다. 강경주류로 꼽히는 민주당 친문과 한국당 친박이 맞서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양측은 지난해 말부터 △김태우·신재민 폭로 △손혜원 부동산 투기 의혹 △김경수 경남지사 법정구속 △환경부 블랙리스트 논란 등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다가 무려 70일 동안 국회 문을 닫았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치솟자, 겨우 국회 문을 다시 열더니 이번에는 '나경원 연설'과 '선거제 패스트트랙'을 놓고 상대 지도부를 윤리위에 제소하는 유례없는 '극한 충돌'을 빚고 있다. 여야 모두 4.3 재보선과 21대 총선에서의 지지층 결집을 노리고 도발을 반복한다는 비판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13일 "여야가 정책과 대안을 놓고 경쟁하는게 아니라 상대당에 대한 비난과 비하를 쏟아내 자기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며 "극단세력이 정치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센터장은 "한반도 평화와 선거제 변화 등 중대한 정치이벤트를 앞두고 정당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모자를 판에 정쟁만 심화시키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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