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사건 속 ‘일그러진 남성문화’ 지적

“촬영물 공유.성관계 자랑하며 남성성 확인”

여성들, 대학가 단톡방 성희롱 사건 떠올려

정준영.승리 등 남성 연예인들이 ‘단톡방’에서 불법촬영물을 돌려본 사실이 드러나면서 과거 대학 내에서 연이어 일어났던 단톡방 성희롱 사건을 떠올리며 ‘일그러진 남성문화’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남성들 사이에선 정준영을 이해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여성을 대상화해 장난처럼 촬영물을 돌려보는 문화가 여전하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기도 하다.

15일 대학 내 성평등 운동을 하고 있는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는 논평을 통해 “승리와 정준영만 유별난 악마가 아니다”면서 남성들 사이에 퍼져 있는 문화와 이를 용납하는 공동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정준영, 힘겨운 귀가길 |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유포 논란을 빚은 가수 정준영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조사를 마친 뒤 청사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이들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국민대 고려대 서울대 경희대 연세대 동국대 충남대 홍익대 등에서 단톡방 성희롱 고발이 있었다”면서 “과연 승리와 정준영이 유별난 악마이냐”고 되물었다. 이들은 “불법촬영물을 ‘국산야동’이라는 이름으로 돌려보고 주변여성을 강간하고 싶다는 말을 농담처럼 나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단지 몇몇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면서 “더 늦기 전에 범죄와 범죄적 사고를 용인해온 문화를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도 14일 성명을 내고 "클럽 버닝썬은 장자연, 김학의 사건에 이어 다시 한 번 남성들의 강간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응축하여 보여주고 있다"면서 "공권력도 명백한 범죄를 '놀이'로, '유흥거리'로 치부하며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하고 착취하며 폭력을 서슴치 않는 강고한 남성카르텔의 일부분이었다”고 했다. 여성연합은 "이러한 범죄들을 방관하고 묵인한 남성들의 '강간문화'를 외면한 채 사건을 축소시키거나 임기응변으로 변죽만 울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라며 "불법촬영물을 생산, 소비, 유포한 모든 자들을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정준영 사건은 과거 일베의 여친 인증이나 대학 내 단톡방 사건과 작동방식이 굉장히 비슷하다”면서 “당시에도 남성들은 촬영물을 공유하면서 누가 여성을 더 비하하고 누가 더 모욕을 줄 수 있는지를 경쟁하고 그래야만 굉장한 남성성이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일그러진 문화가 여전히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사회적 반응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서 대표는 “20년 전에는 이런 일이 있으면 연예인 섹스스캔들로 불리면서 피해자들이 나와서 파문을 일으켜서 죄송하다고 기자회견을 해야 하는 식이었다”면서 “그러나 2015년부터 이어진 소라넷 폐쇄운동도, 지난 한 해 동안 이어진 혜화역 시위 등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여기에는 남성들도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정준영 사건은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남성연대, 남성카르텔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며 “지난해 6차례 열린 불편한 용기의 시위가 있었고,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이 공유되면서 여성들이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을 입증했고 그래서 이번 사안도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게 확실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더 이슈가 된 것”이라고 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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