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위험한 기싸움에 돌입했다. 점진적 비핵화는 더 이상 없다며 빅딜의 일괄타결을 밀어 붙이려는 미국의 압박에 북한도 침묵을 깨고 협상중단과 미사일 발사 재개까지 위협하며 맞대응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강경 위협적인 발언 속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찬사를 잊지 않아 협상의 문은 여전히 열어놓고 있고 미국도 험한 말로 맞불을 놓지 않고 강대강 대치만큼은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양측 모두 판을 깨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새로운 협상을 재개하고 새로운 거래를 모색할 때 유리한 지렛대를 얻어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협상팀들 까지 나서 요구하고 나선 빅딜의 일괄타결은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방식이어서 이를 고집하면 협상을 재개하기도 어렵고 새 거래를 타결하기도 극히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트럼프 레드라인은 핵실험·미사일 발사

워싱턴에서는 북미 협상과 북미관계, 한반도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 있으나 현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이 넘지 말아야 할 금지선, 즉 레드 라인은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재개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밝은 표정으로 작별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헤리티지 재단의 한반도 전문가인 부르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재개하는 것이 분명한 레드라인"이라고 지적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만약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재개한다면 외교적 해결 노력은 중단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 참모들이 현재 앞으로 어떻게 비핵화 대화를 진전시켜 나갈지 대책을 마련하는데 부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지난 한주 폼페이오 장관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공개 언급뿐만 아니라 의회와 전문가그룹에 대한 브리핑 등을 갖고 현상황을 설명하며 출구찾기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지난 11일 카네기 재단 국제평화기금 초청 강연에서 "더이상 점진적 비핵화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괄타결하는 빅딜로 선회했음을 공개 확인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역 방송들과의 연쇄 인터뷰에서 북한에게 빅딜 수용을 거듭 압박했으나 지난 15일에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위협성 발언은 평가절하하며 강대강 대치는 피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트럼프 참모들도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에서 다음이 무엇 인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언제 어떻게 비핵화 협상을 재개시킬 수 있을 것인지, 상당한 차이를 어떻게 좁히고 빅딜을 타결할 수 있을지 잘알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김정은 플랜 B도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 참모들이 일련의 브리핑을 통해 공개한 비하인드 스토리들 가운데 두세가지가 주목을 끌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첫째,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까지 김정은 위원장이 실제로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그룹 브리핑에 참석했던 한인 수미 테리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선임국장은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백악관의 한 관리가 이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이제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둘째, 북한측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그들의 제안이 수용될 것으로 확신하고 거부당할 때 어떻게 할 것인지 이른바 플랜B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미국측이 밝혔다.

셋째, 비건 특별대표는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트럼프 서클에서 일방적으로 책임추궁을 당해 자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비건 대표도 이미 북한의 김혁철 대미특별대표와 실무협상에서 부터 창의성 없는 협상태도와 방식에 매우 화나 있었기 때문에 노딜 정상회담에 찬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 없이 걸어나온 노딜 정상회담으로 비건 대표까지 포함하는 협상팀들이 워싱턴 정치권에선 초당적으로 찬사를 받아 입지를 굳히고 일사분란하게 다소 강경해진 일괄타결, 빅딜 수용을 압박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 외교협회장 단계적 접근 방식 권고

트럼프 행정부 핵심 관리들이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워싱턴의 전문가들과 의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수렴하고 있는 가운데 상당수 워싱턴 전직 관리들과 전문가들은 두 가지를 우려하며 경고하고 있다.

첫째, 기싸움일 지라도 강경발언만 오고갈 경우 그만큼 협상재개가 어려워지고 미사일 발사 재개와 같은 초강수로 강대강 대치로 치닫게 되면 외교적 해결 노력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다.

둘째,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 회장은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방식으로는 전무(Nothing), 즉 아무런 결과도 도출해내지 못할 것이라며 단계적 접근방식을 제안했다. 하스가 권고한 대안은 첫째 초기 단계로 북한은 새협상에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계속 중단을 다시 약속하는데 그치지 않고 핵연료와 핵무기, 장거리 미사일의 생산까지 동결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핵미사일 생산의 동결을 약속하면 필연적으로 북한이 관련시설의 실제 규모를 스스로 공개하는 신고(Declaration), 즉 핵시설 자진신고를 해야 하고 국제사찰단의 검증에도 동의해야 한다. 이 때 북한이 공개하는 핵신고 목록에는 현재 보유 중인 핵무기까지 포함시키지는 않아도 되고 핵연료와 핵무기를 생산해 내는 관련시설만 자진신고하면 된다. 미국은 초반에 폐기할 핵시설로 영변 핵시설과 함께 구체적인 핵시설 한곳을 지정해 폐기를 요구 할 수 있다. 그 대가로 미국은 북한이 이번에 요구한 11건의 유엔제재 중에서 2016년과 2017년에 부과된 5건을 해제 해주어야 한다. 또한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 개설에도 합의해야 한다.

둘째, 북한이 핵미사일 생산 동결과 이에 따른 관련시설 자진신고, 핵시설 폐기 등을 이행하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이를 이행하는 순서를 정하고 제재해제도 5건을 실행순서에 따라 하나하나씩 순차적으로 풀어 주는 일정표까지 합의해야 한다.

셋째, 북한이 모든 핵미사일을 포기한 이후에나 미국도 모든 제재를 해제해주고 그때에 국교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도 완료하면 된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