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세철 국립공원공단 변호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어디일까. 지난해 법정에서 변론 중 우리나라 국립공원이 에베레스트산만큼 위험한 곳이라고 주장한 일이 있다. 당시 부장판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에베레스트 같은 소리 하지 마시라며 내게 핀잔을 주었다. 법정을 나설 때 창밖 멀찍이 북한산이 보였다. 문득 국립공원의 위험성에 대한 등산객들의 인식이 저 부장판사 정도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 동안 에베레스트산에서 사망한 사람은 74명인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 국립공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143명이다. 양자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지만 이와 같은 수치를 통해 국립공원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도시공원을 떠올리게 하는 ‘공원’이라는 명칭 때문에 자연공원인 국립공원을 도시공원처럼 안전한 곳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립공원은 자연의 상태 그대로가 직접 공적 목적에 제공된 자연공물(自然公物)이므로 국립공원과 도시공원의 위험성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에베레스트산도 네팔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등산객들, 위험 감수할 수밖에 없어

국립공원이 사는 곳 주변에 있어 익숙하다든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오르기에 국립공원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지난 7년 동안 80명이 심장돌연사로, 35명이 추락사로, 17명이 동사와 익사로 사망했다. 1969년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눈사태로 10명이 사망했으며, 2007년 북한산 용혈봉에서 낙뢰로 4명이 사망했다. 낙석사고는 드물지만 1억7천만 년 전에 형성된 노년기 암석들이 설악산, 북한산 등 국립공원에 다수 분포하고 있다는 것도 작지 않은 위험요소다.

국립공원에서 사고를 당할 경우 호소할 곳도 없다. 모험과 위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등산객들은 모험을 하면서 아름다운 경관에 숨어있는 자연의 위험까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극히 드물게 사망자의 유족이나 부상자가 국립공원에서 사고가 났으니 국가나 국립공원공단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불운(不運)과 불법(不法)의 영역은 다르다. 공원시설의 하자 등으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국가 등이 책임을 지는 경우는 없다.

법원도 과거 월악산 낙석사망사건에서 “국립공원은 산의 자연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조성되었고 등산 역시 산의 자연지세를 그대로 이용하는 스포츠여서 등산에는 어느 정도의 위험은 따르는 것이다. 국립공원의 관리자인 공단은 원칙적으로 산의 지세를 있는 그대로 유지ㆍ관리하되 여기에 자연적 또는 인위적 위험요소가 명백한 경우에만 상당한 범위 내의 안전시설을 설치ㆍ관리하면 족하다”며 공단에게 손해배상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지리산계곡 익사사건에서도 “공단으로서는 기상 악화 등으로 탐방객의 안전이 위험하다면 입산을 통제하는 등으로 족한 것이지 인공적으로 위험방지시설을 설치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만약 원고들 주장과 같이 국립공원 중 위험한 곳에 모두 위험 방지 시설을 하여야 한다면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은 수려한 자연환경이 파괴되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 분명하다. 교량 등 안전시설이 설치되지 아니한 계곡을 통행하는 탐방객이라면 급격한 기상악화에 따른 위험에 대면하여 스스로 그와 같은 산악, 자연환경 및 기상상태에 알맞은 상식으로 통행함으로써 안전사고발생의 위험을 방지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하며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음지의 잔설과 얼음, 낙석 조심해야

그 어떤 등산객도 죽거나 다치기 위해 산에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심장질환, 저체온, 폭우와 폭설, 낙뢰, 낙석 등으로 매년 수많은 등산객이 죽거나 다친다.

며칠 전 지리산에서 북방산개구리들이 첫 산란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벌써부터 봄기운이 느껴진다. 바야흐로 본격적으로 등산할 때가 다가왔다. 하지만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해빙기이기에 숨어있는 위험원이 많다. 음지의 잔설과 얼음, 낙석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변덕스러운 날씨와 큰 일교차에 대비할 수 있도록 복장에도 신경 써야 한다. 아무쪼록 올해도 국립공원을 찾는 모든 등산객들에게 안전과 건강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길세철 국립공원공단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