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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기고]

제로페이 혁신 성과 내려면

등록 : 2019-04-01 10:41:11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경제학박사

법률과 제도, 관습과 문화, 그리고 과학적 지식과 기술 등이 한번 형성되면 외부의 다양한 충격과 사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내용과 형태가 존속하는 현상을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 한다. 예컨대 의원내각제 국가나 대통령제국가에서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로 바뀌는 것이 어려운 배경 등이 경로의존성이라 할 수 있다.

즉 한번 일정한 경로에 진입하게 되면 이후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고 문제가 있어도 벗어나기 어렵다. ‘재벌중심 경제구조가 한국의 오늘을 만들었다’는 신화는 여기서 파생된 잘못된 법제도와 관행마저 쉽게 떨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로부터 현재의 각종 불공정과 불평등이 초래됐다. 따라서 국가 전체적으로 개혁과 혁신이 필요하며 시장자동조절장치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시키지 못한다면 정부 등 공공이 개입해 보완해야 한다.

신용카드 독주, 경로의존성의 결과

이 관점에서 보면 결제 서비스 시장의 압도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신용카드 제도도 강한 경로의존성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신용카드 도입초기의 목적은 소비자의 결제 편의성보다는 조세투명성 확보와 탈세방지 등 세원확보차원의 목적이 더 컸다.

정부는 신용카드 활성화를 위해 사용금액에 대한 소득공제를 도입했고 부가가치세 세액공제도 도입했다. 그리고 가맹점 카드거래를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의무수납제도도 시행했다. 나아가 신용카드 영수증에 대해 매월 1등에는 1억원의 당첨금도 지급한 바 있다. 이처럼 정부에 의해 조성된 카드산업생태계는 카드대란을 발생시켰고 가계부채 증가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의 카드결제 시스템은 경제적 약자인 개별 소비자와 특히 소상공자영업자들에 대해 부당한 대우를 해왔으며, 다른 한편으로 혁신을 저해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수수료가 낮고, 사회적 비용이 적은 미래 서비스가 일반화되는데도 ICT 선진국인 한국에서는 여전히 카드결제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의 위쳇페이와 알리페이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데 IT 강국 한국에서는 다른 혁신적 수단이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시스템에 의한 경로의존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결제 서비스분야의 혁신이 부진하다면 누군가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기존의 결제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수수료로 연간 약5조원이 지출되고 있다든지, 중소 핀테크 업체와 간편 결제회사 들이 기존체제의 고비용 관행을 넘어서지 못한다든지, 구조적으로 대자본가맹점 보다 소상공인들에게 더 높은 수수료를 부담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혁신을 통해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처럼 민간영역에서의 자율적 혁신이 부진하다면 종합적 시각을 가진 제3자로서 정부 개입은 필요하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울시와 중기부 등이 추진하고 있는 제로페이가 관치페이인가 여부다.

결제사업자들을 위한 허브 고속도로

한마디로 요약하면 제로페이는 결제 사업자들을 위한 허브 고속도로다. 제로페이는 독자적 시스템을 완비한 결제 시스템이 아니다. 간편 결제사업자, 은행 및 이들을 연결하는 금융결제원 허브시스템의 총합이다. 즉 결제사업의 혁신을 위한 허브 고속도로로서 공공이 민간 결제서비스 업체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혁신적 결제서비스를 추진하는 사업자들이 허브고속도로에서 각각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과점적 영역에 경쟁적 요소를 부가해 사회적 효용을 높여주는 역할인 것이다. 따라서 관치페이라는 비판은 이 제도의 내용과 발전의 원천을 알지 못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이 제도는 600만 소상공자영업자를 위한 카드수수료 절감 대책으로서 서울시 경제민주화공약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의미와 함께 이제는 민간 영역의 창의성 유발과 혁신을 지원하는 공공부문의 정당한 역할로 평가되어야 한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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