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백범 교육부 차관

전례 없는 변혁과 뿌리째 흔들리는 불확실성의 세계에 우리 자신과 아이들을 어떻게 대비시켜야 할까? 유발 하라리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던진 질문이다. 그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할 교육 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바로 ‘더 많은 정보’라고 말한다. 2050년의 세계에 발맞춰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반복해서 ‘재발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균의 종말’의 저자인 토드 로즈는 평균 점수와 등급 같은 것이 과거 산업 사회에선 타당했을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개인의 역량을 판단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두 학자의 이야기는 교육혁신의 논의에서 새로운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공교육을 통해 사회적 합의와 절차를 거쳐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가에 있다.

교육정책의 목표는 학생의 ‘개인성’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

왜 모든 국가들이 학생 평가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생각해보자.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철학과 방식은 학생들이 경험하는 교육 활동의 질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 사회가 미래 세대에게 어떠한 자질과 역량을 요구하는지 제도적으로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을 평가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측면에선 자신의 성장을 점검하고 일정한 자격을 인정받는 일이지만 사회적으론 인재를 선발하는 방향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복합성 때문에 공교육의 평가시스템은 개인적인 문제로만 단순화하여 바라볼 수 없다.

학생을 평가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 지식 수업과 객관식 지필시험 안에서는 학생들이 반복 암기와 문제풀이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학생마다 다른 관심과 흥미, 재능과 잠재력, 진로 탐색의 권리가 시험 점수에 가려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지 학교 현장에서 변화를 위한 노력이 지지를 받고 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와 혁신학교, 2015 개정, 그리고 최근의 고교 학점제와 학생부 종합전형에 이르기까지 초·중등교육과 대학입시를 관통하는 교육정책의 목표는 학생을 표준화된 지식과 점수의 틀에 가두지 않고 그들의 ‘개인성’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다.

능력의 개념과 인재상이 달라졌다면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주는 게 합당하다. 우리는 객관식 지필시험과 점수에 익숙하다. 하지만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평가 방식으론 더 이상 학생의 ‘개인성’을 발휘하도록 도울 수 없다. 정해진 틀을 잘 지키는 사람은 키워낼 수 있을지라도 대한민국의 학생들을 세계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키울 수 없다.

발상을 전환하여 평가 시스템을 학생들에게 맞추어 나가야 한다. 모든 아이는 각자의 성향과 잘하는 것, 그리고 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 고교 학점제는 모든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수업시간표를 만들어 주고자 도입된 정책이다. 이와 같이 교육과정과 수업이 창의적으로 변화되면 한 줄세우기 평가 결과보다는 학생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성취수준에 도달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교사는 객관식평가, 수행평가, 서술 및 논술형 평가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배움의 여정을 가까이에서 관찰한 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한다. 학생부는 종합적인 성장 보고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내신 평가와 학교생활기록부의 신뢰성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교육부의 차관으로서 엄중하게 받아들인다. 지난 해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학생부의 사교육 유발요소를 대폭 정비하였으며, 교사-자녀 상피제, 고사관리실 CCTV 설치 등 점검과 관리 감독에 힘을 쏟고 있다. 시도교육청과 함께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고 학생부 기재 격차도 줄일 계획이다. 새로운 학생부의 현장 적용 시점에 맞춰 교육부는 ‘바람직한 학생평가와 학교생활기록부’를 주제로 고교 교사와 대학의 입학사정관이 참여하는 권역별 원탁토의를 개최한다. 앞으로 학부모와의 소통을 위해 순회 설명회도 열 계획이다.

학생부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

교육 혁신은 점수와 등급에 가려진 아이들의 참모습을 발견하려는 현장의 노력에서 시작되었고, 여기에 정책의 뒷받침과 국민들의 신뢰가 더해질 때 완성된다고 믿는다. 교육부는 학생 평가와 학생부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할 계획이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