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대표

부동산가격공시제도란 토지, 주택 등 부동산의 적정가격을 공시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 제도에 의해 산정된 부동산 가격이 과세, 부담금 등 60여가지 행정목적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간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부동산가격공시제도의 개혁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학계와 시민사회는 공시지가와 공시가격이 실거래가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공시지가와 공시가격이 실거래가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는 지적

국토교통부는 2018년 기준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이 표준주택은 51.8%, 토지는 62.6%, 공동주택은 68.1%라고 주장한다. 반면 학계와 시민사회는 아파트 공시가격이 실거래가의 65%수준이고, 단독주택은 30~40%수준이며, 재벌 등이 보유한 토지는 35%수준에 머문다고 주장한다. 현실은 국토부와 학계.시민사회 주장 가운데 어느 지점이겠지만,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이 매우 낮다는 사실만은 자명하다.

부동산가격공시제도의 또 다른 문제는 부동산 유형별, 지역별, 가격대별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공동주택이 단독주택이나 토지에 비해 현실화율이 월등히 높고, 고가주택이 저가주택보다 현실화율이 낮은 역진성을 강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비록 올해 표준지공시지가(전국 9.42%↑, 서울 13.87%↑), 공동주택 공시가격(전국 5.32%↑, 서울 14.17%↑),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전국 9.13%↑, 서울 17.75%↑)이 전년도에 비해 각각 상승했지만, 전년도의 부동산 가격급등을 생각하면 상승폭은 제한적이라 할 것이다.

특히 주의할 것은 공시가격이 급격히 올라가면 보유세도 덩달아 폭등한다는 '세금폭탄론'은 악의적 거짓선동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주택을 보자. 공시가격 기준 3억원 이하 주택의 재산세는 직전연도 대비 5%, 3억~6억원 주택은 10%, 6억원~9억원 주택은 30%가 세부담상한이다. 아무리 공시가격이 올라도 전년도에 비해 늘어나는 세부담 상한이 엄격히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참고로 근래 정부가 고시한 표준단독주택 중 95%가 공시가격 5억원 이하 주택이다.

보유세의 대부분을 이루는 재산세 납부대상자들이 재산세를 얼마나 내는지를 한번 계산해 봤다. 공시가격 8억9900만원(공시가격 9억 초과 주택은 1주택 소유자라도 종부세 부과 대상)짜리 아파트 1채를 소유한 사람이 납부하는 재산세는 152만7600원에 불과하다. 즉 실거래가 13억원이 넘는 아파트 1채를 소유한 사람이 보유세를 160만원도 내지 않는 것이다.

종부세 과세 대상자들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이건 기우(杞憂)다. 주택가격이 폭등해 종부세 과세 대상자가 늘어났지만 전체세대 가운데 3%를 밑돈다. 게다가 1주택자의 경우 공시가격 9억원 초과 주택에만 부과되고, 종부세는 전년 대비 50%이상 세부담을 늘릴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서울 등 조정대상지역 내 2주택자도 전년보다 세부담이 100%까지만 늘어난다. 60세 이상 고령자 세액공제(10~30%)와 5년 이상 장기보유자 세액공제(20~40%)를 감안할 때 종부세 부담은 더 줄어든다.

2006년부터 작년까지 서울 아파트의 실거래가가 80%가량 올랐다는 소식, 대한민국 근로자 절반이 넘는 887만명의 월 소득이 200만원 이하라는 소식앞에 '공시가격 상승=세금폭탄' 프레임은 너무 염치없어 보인다.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률을 80%까지 올려야

문재인정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부동산공시가격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개혁의 방향은 간명하다. 부동산 유형을 불문하고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률을 80%까지 올리겠다고 천명한 후 이를 달성할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다.

다만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른 보유세 납부부담이 발생할 수 있으니 보유세 납부대상자들에게 매각 및 증여 등 소유부동산 처분시까지 납부를 유예하는 납부유예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소유한 부동산을 지분형식으로 납부하는 물납 등의 옵션을 주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