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생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업 협회장

고사성어 중에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말이 있다. ‘소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의미로 잘못을 고치려다 방법이나 정도가 지나쳐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뜻한다.

얼마 전 폐차업계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지난 1월 폐차경매 플랫폼 업체인 A사가 ICT분야 규제 샌드박스제도 시행에 맞춰 신청한 ‘모바일 기반 폐차견적비교서비스’(온라인 폐차알선)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ICT 분야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로 지정한 것이다.

A사의 사업모델은 폐차를 원하는 고객이 자신의 차량을 플랫폼에 올리면 전국의 폐차사업자가 이를 보고 차주에게 얼마를 줄 것인지를 경쟁 입찰한다. 이후 차주가 최고가를 제시한 폐차업자에게 차를 넘겨 폐차를 의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규제센드박스 시행이 초법적 특혜인가

‘폐차는 차주와 폐차업자간 직거래로만 이뤄져야 하고 알선업자가 중간에 끼는 것을 금지한다’라고 명기되어 있는 자동차관리법 57조의2를 명백히 위반한 위법행위지만 실증규제특례 적용을 받은 A업체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기술 서비스의 현장시험, 기술적 검증을 위한 관련 규제 전부 또는 일부를 면할 수 있음은 물론 기존의 다른 법령에 위배되어도 사업수행이 가능한 초법적인 특혜를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이번 A업체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지정’이 폐차 고객과 폐차 업자를 온라인으로 연결해주고 고객편익을 증대시킨다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폐차를 이용한 불법행태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폐차된 차량은 총 88만3865대에 이른다. 하루 평균 2421대가 폐차되고 있으며, 차량 등록대수의 증가와 함께 폐차시장도 꾸준히 성장해 왔다. 하지만 시장의 성장에 비례하여 폐차관련 불법행위들 역시 암암리에 이루어져 왔다. 이에 정부에서는 2015년 ‘자동차 관리법’을 개정하여 ‘자동차 해체 재활용업’으로 등록한 정식 업체만 폐차를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여전히 영업허가도 없이 차를 해체하거나, 중고차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등 ‘폐차’를 이용한 불법 행태들이 반복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필자는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 폐차알선’이 허용된다면 시장의 혼란은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수수료 같은 경제적 손실 속에 오히려 받는 편익보다 피해가 더 커지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가 벌어지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첫째, 불법 브로커들의 난립이 불 보듯 뻔하다. 아울러 폐차되어야 할 차량들이 중고차 시장으로 흘러들 가능성이 커져 사고위험이 높아지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안전에 위협받게 될 것이다.

둘째, 사업수행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폐차경매 입찰 참여자에 대한 적정한 확인절차 등 공정한 사업수행을 위한 시스템이 전혀 준비되어있지 않는 현 상황에서 폐차업체와 소비자 모두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예상되는 부작용의 해결책 마련이 우선

끝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과 자원순환법 개정으로 인해 높아진 폐차처리 비용, 고철값 폭락으로 인한 수익 감소 등 벼랑 끝에 몰려있는 폐차업계 전면적 붕괴는 물론 그들이 고용하고 있는 1만명 근로자의 생존권도 문제가 될 것이다.

무릇 규제란 정확한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이 있을 때 개선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제샌드박스’라는 미명하에 이런 조건들이 선결되지 않는다면 선한의도와 달리 부작용만 속출될 것이다.

모든 일에는 중요도와 순서가 있다. 현재도 폐차관련 불법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는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폐차업계와 시장의 안정화다. 소의 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 그 자체다. 휘어있는 뿔을 바로잡기 위해 멀쩡한 소를 죽이는 우를 범할 셈인가.

양승생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업 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