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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세상은 '거대한 일본'이 된다

'몰딘이코노믹스'

등록 : 2019-04-18 11:39:26

아직까지 주요국 경제는 좋다. 하지만 2020년 경제침체가 닥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물론 1~2년 연기될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 현재의 성장국면은 결국 막을 내릴 것이다. 경제침체든 아니면 성장이 멈춘 상태로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온라인 경제전문매체 '몰딘이코노믹스' 대표인 존 몰딘은 17일 "'그레이트 리셋'(거대한 초기화)으로 불리는 글로벌 신용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 세계는 일본이 1990년 이후 겪었던,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른바 전 세계의 '일본화'(Japanification)다.


물론 그런 상황이 세상의 종말은 아니다. 일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일본이 굼뜨나마 성장하는 건 수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일본과 같은 상황에 진입한다면 수출주도 전략도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게 몰딘의 전망이다.

전 세계의 일본화에 대해 일본은 억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어울리는 용어를 찾긴 힘들다. 몰딘은 "좋은 소식은 일본화가 서서히 퍼질 것이라는 점이고, 나쁜 소식은 일본화에서 탈피하는 것도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잃어버린 시간들

몰딘은 세계가 왜 일본처럼 변하는지에 앞서 일본의 현재를 만든 상황을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길고도 점진적인 과정이었다. 서서히 끓는 물에 담긴 개구리처럼, 당시에는 누구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미국과 서유럽이 일본 경제 재건에 도움을 줬다. 물론 자선을 베푼 것은 아니었다. 당시 소련과 중국을 막는 서구의 방파제로서 일본의 활용가치는 컸다.

일본의 경제는 급속하게 확장됐다. 1980년대 일본의 자산 거품이 정점을 찍었다. 결국 90년대 초 거품이 꺼졌다.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과정이 뒤따랐다. 사실 10년을 훨씬 넘었다. 2000년대 초 반짝 경제회복세가 있었지만 이후 또 다시 기나긴 불황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은 줄어들고, 임금은 하락하고, 자산가격은 반토막나거나 기껏해야 횡보였다.

잃어버린 10년은 통화정책과 관련이 깊었다. 이른바 1985년 '플라자합의'다. 엔화가치가 올랐고, 자산거품을 더욱 부추겼다. 일본중앙은행은 1989년 초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하며 자산거품을 꺼뜨리려 했다.

일본중앙은행은 1992년 기준금리를 6%까지 올렸다가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몇년 뒤 제로수준까지 내렸다. 그 이후 2000년대 들어 2차례 짧은 긴축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이를 감내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후 더 이상 금리인상은 없었다.

일본중앙은행은 20년 동안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양적완화 비슷한 통화정책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 역시 효과는 거의 없다.

반면 일본 정부는 각종 재정정책을 시도했다.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와 탈규제, 세금감면 등이다. 이 역시 효과가 거의 없었다. GDP 성장은 제로 수준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역시 마찬가지다.

실질적 도움이 된 유일한 방법은 엔화가치를 끌어내리는 것이었다. 역대 행정부와 중앙은행 총재들이 환율에 매달린 이유다. 몰딘은 "가진 도구가 해머뿐이라면 다룰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못"이라고 지적했다. 말인즉슨, 통화정책으로 안되는 건 적게든 많게든 사들였다. 주식ETF와 기타 민간자산을 포함해서다.

몰딘은 "일본은 '가짜 자본주의'의 전형"이라고 지적한다. 모든 자본이 기업으로 가지만 그 이유는 기업이 혁신적이고 이익을 내는 사업구상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거기에 기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좀비기업이 즐비한 이유다.

최소한 현재까지 그 결과는 경제호황도 침체도 아닌 애매한 상황의 지속이다. 일본 경제는 거대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렇다고 굶주린 국민들이 배식표를 받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하는 나라는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이 현재 상황을 무한정 지속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눈에 띄는 출구도 없다.

일본중앙은행은 살 수 있는 모든 채권을 사들이면서 엔화를 금융시스템에 주입하려 노력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높이려는 목적에서다. 하지만 효과가 없다. 일본과 유럽에 이어 조만간 미국도 맞닥뜨릴 상황이다.

미국 CNBC 선정 최고의 온라인 경제금융 블로그 7위에 선정된 '오브투마인드'(Of Two Minds) 발행자 찰스 휴 스미스는 "좀비화 또는 일본화를 만드는 또 다른 동력은 과거의 성공이 지배엘리트에게 족쇄가 돼 실패한 모델에 집착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파워엘리트들은 이전에 실패한 방법에 더 극단적인 처방을 보태게 된다. 만약 기준금리를 낮추는 게 장기적 성장정체를 불렀다면, 파워엘리트들은 기준금리를 제로까지 낮춘다. 그것 역시 실패하면, 마이너스로 금리를 낮춘다. 이 역시 실패하면, 통계를 조작해 상황이 괜찮아 보이도록 한다. 올해 초 아베 신조 총리의 '아베노믹스'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일본 정부가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 대표적 사례다. 스미스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인 장클로드 융커는 '상황이 심각해지면 거짓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상기시켰다.


일본뿐 아니다. 실패한 모델에 더 극단적인 방법을 보태는 것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한 것이다. 제로금리는 효과를 거의 못 냈다. 연준은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성공은 제한적이었고 부작용은 많았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마찬가지였다. 연준보다 더 많은 유동성을 주입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몰딘은 "이제 미국과 유럽이 해야 할 일은 일본이 걸어간 길을 뒤따라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준은 2017~18년 경제부양과 관련한 다양한 실험적 통화정책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했다. 기준금리를 올렸고 양적긴축(QT)에 돌입했다. 몰딘은 "두 처방 모두 더 일찍 시행돼야 했다, 그리고 동시에 시행되면 안됐다"고 지적했다.

연준의 자산 축소는 실질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효과를 낸다. 자산축소를 포함한 연준의 통화긴축 정책은 1980년대 초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의 공세적인 기준금리 인상만큼 강력한 효과를 냈다. 그러자 시장의 불평이 터져나왔다. 월가는 불만에 가득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연준의 발목을 잡은 진짜 이벤트는 2018년 말 시장의 긴축발작이었다. 빌리는 이나 빌려주는 이나 모두 연준에 불평불만을 터뜨렸다. 수익률 곡선이 평탄해지더니 곧 역전될 기미를 보였다. 그러더니 해가 바뀐 올해 수차례 역전됐다. 경제지표 약화와 맞물렸다. 인내심의 한계를 넘는 상황이었다. 연준이 아직 통화완화정책으로 완전히 돌아서지 않았지만, 올해 하반기 입장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반면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도 잠깐이나마 긴축정책을 취하려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다. 대서양 양측의 미국과 유럽은 비전통적인 통화완화정책을 중단하려 계획했지만 멈춰섰다. 2000년대 들어 일본중앙은행이 두 차례 긴축을 시도하다 포기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재정정책 경로도 따라가고 있다. 급속히 늘어나는 재정적자 때문이다. 올해 미국은 일본의 적자 수준을 추월할 전망이다. GDP 대비 일본 적자는 4% 밑이다. 반면 미국은 5%에 근접하고 있다. 점차 누적되는 '미적립 채무'(unfunded liabilities : 연금, 의료보험, 학자금 대출, 연방주택자금 등)를 고려하면 미국의 적자는 향후 더욱 커질 것이다. 미국은 점차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연준 자산 10조달러까지 늘어날 수도

주요 선진국의 경제성장은 이미 둔화되기 시작했다. 올해말 글로벌 경제침체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연준이 현재 성장사이클을 연장하기 위해 재빨리 통화완화정책으로 돌아서지 않는다면 미국도 다른 나라들처럼 경제침체로 끌려들어가게 될 것이다.

다른 중앙은행들은 저금리와 양적완화로 대응할 것이다. 현재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총자산은 20조달러를 넘는다. 10년 전에 이같은 상황을 예견한 사람이 있다면 모두들 '미친 소리'라고 했을 것이다. 또는 '그같은 일이 생긴다면 자본주의 경제는 이미 파탄나 있을 것'이라고 반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실제 그렇게 변했고,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연준이 제로금리를 시행할지, 전 세계 11조달러 국채금리가 마이너스로 주저앉을지, ECB와 스위스중앙은행이 마이너스금리를 시행할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TARP)과 양적완화, 제로금리 등 연준의 통화정책은 시행 몇달 전까지도 아무도 내다보지 못했다.

다음 위기가 오면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는 무언가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중앙은행들은 다시 한 번 자산매입에 몰두할 것이다. 몰딘은 "하지만 지난 10년보다 효과는 더욱 떨어질 것"이라며 "중앙은행들이 시스템에 주입한 돈은 은행 자산에 쌓이게 될 것이고, 은행들은 그 자산을 다시 연준의 자산에 쌓아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전 세계적 경제침체가 오면 믿을 만한 채무자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 기업들의 신용은 '투자'등급에서 '정크'등급으로 대거 하락하면서 유동성에 대한 요구가 커질 것"이라며 "하지만 안정적 수익을 찾아 헤매는 연기금과 보험사 등은 회사채를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준의 자산이 4조5000억달러까지 부풀어 올랐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 하지만 한 번 놀라지 두 번 놀라지는 않는다. 전 세계는 '중앙은행의 마구잡이 자산 매입'이라는 새로운 통화정책을 지켜봤다.

몰딘은 "앞으로 연준은 자산과 관련해 현 수준인 4조달러를 유지할 것이고 미국이 경제침체에 돌입한다면 또 다시 돈을 찍어내 자산을 늘릴 것"이라며 "2020년대 중반엔 연준 자산이 10조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연준은 어떤 자산을 매입할까. 현행법상 연준은 국채와 정부가 보증하는 모기지채권 등을 매입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이란 바뀔 수 있다. 다음 위기가 닥치면 이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연준 자산이 10조달러까지 부풀어오를 것이라는 예상의 또 다른 근거는 미국 공적부채가 30조달러를 향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향후 5년 동안 회사채 롤오버(만기연장)에 필요한 금액만 5조달러다. 여기에 기업이 새로 발행하는 회사채, 주정부와 기초단체가 발행하는 지방채가 덧붙여질 것이다. 이를 받아줄 수요는 미국 밖에서 나오기 힘들다. 오직 은행과 거대 연기금, 개인이 사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연준이 또 다시 개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리는 치솟이고 경제위기는 더 악화될 것이다. 연준은 또 한번 시장에 개입해 막무가내로 국채를 사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는 자기실현적 예언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끝나야만 한다. 하지만 언제 끝날 것인가. 오히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끝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런 분석은 다름 아닌 골드만삭스에서 나왔다.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인 단 스트루이벤과 데이빗 메리클은 "일본의 사례를 보면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인 세계 3대 경제국이 부채위기를 겪지 않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한다. 2017년말 기준 일본 정부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36%였다. 이는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 108%보다 2배나 높았다.

일본중앙은행은 GDP 정도 규모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자국 기업 회사채와 글로벌 회사채도 보유하고 있다. 연준은 대략 미 국채 총량의 35%를 보유하고 있다. 몰딘은 "연준이 미래 어느 시점에 미 국채 20조달러어치를 보유할 것이라 상상하는 게 지나친 것일까"라며 "일본 역시 20년 전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같은 시나리오는 생각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펼쳐질 것"이라며 "그럼에도 세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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