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외무성 "폼페이오 끼면 일 꼬여" … 국무부 "건설적 협상 준비돼 있다"

비핵화협상 재개의 조건을 놓고 북미간 신경전과 수 싸움이 서서히 가열될 조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이틀 군사행보로 미국을 자극했던 북한이 외무성 당국자를 내세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협상대표 교체 요구 카드를 내밀었고, 미국은 맞대응을 자제하며 협상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고위급협상 카운터파트다.

북한은 18일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 형식을 활용해 "앞으로 미국과의 대화가 제개되는 경우에도 나는 폼페이오가 아닌 우리와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만하고 원숙한 인물이 우리의 대화상대로 나서기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권 국장은 하노이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일이 될 만하다가도 폼페이오만 끼어들면 일이 꼬이고 결과물이 날아났다", "폼페이오가 회담에 관여하면 또 판이 지저분해지고 일이 꼬일 수 있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북한이 공개적으로 '폼페이오 비토론'을 펼친 것이다. 김 위원장이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 현지 지도에 나선지 하루 만이다.

미국은 즉각 대응을 하지 않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북한의 의도와 향배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국무부는 북한의 폼페이오 배제 요구에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 건설적 협상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백악관도 전날 밤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 뉴스에 "보도를 인지하고 있으며 추가로 언급할 것은 없다"는 반응만 내놓았다.

북한이 일괄타결식 빅딜을 수용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으나 대화의 문을 여전히 열어놓겠다는 원칙은 그대로이고, 섣불리 북한을 자극해 협상의 판을 깨지도 않겠다는 신중함이 엿보인다.

상황을 종합하면, 김 위원장이 '연말 시한'을 던지며 미국의 입장 변화를 촉구한데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속도조절론에 기초한 '빅딜'로 응수하자 북한이 공세를 서서히 높여가는 방식으로 북미간 수싸움이 전개되는 양상이다.

AP통신은 이날 폼페이오 교체 요구와 전술유도무기 시험에 대해 "두가지 모두 협상 교착상태에 대한 북한의 불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두 가지가 서로 직접 연결된 건 아니지만, 북한 정권이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건 분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라고 전했다.

대화와 협상을 판을 깨지 않겠다는 의사는 북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파악된다. 외무성 권 국장은 폼페이오 장관을 비난하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는 폼페이오를 누구로 교체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이 트럼프와 직접 대화하길 원한다는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을 소개하며 북한이 '하노이 노딜' 이후 지렛대를 다시 확보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CNN방송은 북한의 폼페이오 비토가 트럼프 대통령을 난감한 상황으로 내몰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신의 '복심'으로 협상을 총괄해온 폼페이오를 내칠 경우 '나약함'으로 비칠 수 있고, 폼페이오 장관을 계속 협상 총괄역으로 둘 경우 북한이 협상테이블로 돌아와 대화하는 데 동의할 것이란 걸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이런 압박에 빅딜론과 속도조절론에서 섣불리 물러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결렬로 국내에서 호평을 받은 데다 미국 조야의 대북 불신과 비핵화 회의론은 여전히 강하다. 북미간 기싸움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상범 기자 · 워싱턴=한면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