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헤지펀드 고의 파산 부추겨

전통적인 개념의 금융투자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한 투자자가 애플 주식을 살 수 있고, 또 다른 투자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주식을 살 수 있다. 두 투자자 모두 돈을 벌 수 있다. 애플과 MS가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피터지게 경쟁한다 해도 두 기업 모두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용부도스와프'(CDS)로 불리는 파생상품시장에선 그렇지 않다고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 최신호는 지적했다. CDS 시장에서 한 투자자가 승자라면, 거래상대방은 패자가 된다. CDS는 한 기업이 채권에 대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할 것이냐를 두고 돈을 거는 파생상품이다. 돈을 빌려주는 측에서는 일종의 보험상품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실패에 대처하는 보호상품(CDS)을 사기 위해 해당 기업의 회사채를 굳이 소지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투자 한 쪽에 있는 거래자는 해당 회사가 잘 운영되는 한 거래상대방이 낸 보험료를 얻는다. 거래상대방은 반면 해당 회사가 파산할 경우 거액의 돈을 받는다. 둘 중 한 명은 피를 봐야 한다.

여기서 '이전투구'가 시작된다. CDS에 투자하는 일부 헤지펀드들은 교묘하게 숨겨진 계약 조항을 무기화해 돈을 벌려고 한다. 이들은 재정난에 빠진 기업들이 고의로 파산하도록 조종한다. 또는 지난해말 파산한 미국의 거대 백화점 체인인 시어스처럼 CDS 수익금의 규모를 조작한다.

CDS 전문가인 텍사스대 로스쿨 교수 헨리 후는 "CDS 시장 참가자들 모두 믿을 수 없을 만큼 지적수준이 높은 사람들로, 내로라하는 변호사들을 대동하고 거래한다"며 "그들은 무궁무진한 창의력의 소유자들"이라고 말했다.

10조달러에 이르는 CDS 시장 규모에 비하면 그같은 사기극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시장 전체 물을 흐린다. 오죽하면 다른 헤지펀드들이 CDS 시장의 조작이 횡행한다며 고의 파산을 막는 규제안을 제안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대표적 사례는 미국의 주택건설업체인 호브내니언 엔터프라이즈다. 2017년 공룡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신용 자회사인 'GSO캐피털파트너스'는 호브내니언에게 저리의 융자를 제안했다. 여기엔 한 가지 함정이 있었다. GSO는 호브내니언이 이전에 빌렸던 부채 일부를 부도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되면 GSO는 이전에 사들였던 CDS 계약에서 3억3300만달러(약 3785억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상대방 중 한 곳인 또 다른 헤지펀드 '솔루스 얼터너티브 애셋 매니지먼트'는 GSO와 오브내니언을 상대로 '시장 조작'이라며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당시 블랙스톤은 "소송은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폄하했고, 호브내니언은 "우리 회사는 올바르게 처신했다"고 반박했다. 소송은 결국 지난해 마무리됐다. 솔루스는 "GSO, 호브내니언과 합의했다"며 소송을 철회했다. 양측은 구체적인 합의안을 밝히지 않았다.

빌리는 기업 입장에선 CDS 거래 양쪽에 있는 헤지펀드들을 서로 다투도록 유도할 수 있다. 언론그룹인 매클래치는 헤지펀드 '채텀 애셋 매니지먼트'로부터 대출을 연장 받는 거래를 타결했다. 채텀은 매클래치의 부채에 대해 헤지하는 CDS 계약을 팔았기 때문이다. 채텀이 매클래치의 부채를 관리하는 한 매클래치의 디폴트에 대한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해당 CDS 거래상대방인 다른 헤지펀드가 매클래치에 새로운 차환 거래를 제안했다. 자기들이 대출을 해줄 테니 채텀과의 계약조항을 변경하라는 것. 매클래치는 이를 받아들였다.

BBW는 "CDS 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재의 행태는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모기지담보증권에 대한 CDS 거래가 만연하면서 미국 주택소유자들에 대한 마구잡이 투기가 가능했다.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규모를 파악하기 힘든 막대한 리스크 하중이 걸렸다. 미국 정부는 결국 CDS 시장의 최대 참가자 중 한 곳인 보험사 AIG를 시민의 세금으로 구제금융했다. 미 정부는 CDS 거래자가 파산할 경우 시장이 손실을 흡수할 수 있도록 청산결제소를 통해서만 파생상품을 거래하도록 규제를 신설했다. 하지만 가장 영민한 전문가들조차 파생상품 시장이 어디 방향으로 진화할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2013년 지금과 같은 사기적 CDS 거래가 처음 출현했다. 영국 런던에 있는 GSO 트레이더 아크샤이 샤는 어떤 경우에도 잃는 일이 없는 CDS 거래를 고안했다. 스페인 게임제작업체인 코데레 SA가 부분적으로 파산할 경우 거액의 지급료를 받는 CDS를 사들였다. 그런 뒤 GSO는 코데레에 거액을 대출해주면서 'CDS 계약을 촉발할 정도로만 이자지급을 유예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또 다른 사례는 거대 백화점 체인 시어스의 파산이다. 시어스는 지난해 10월 파산을 신청했다. 파산 신청 직후 월가의 헤지펀드들이 시어스의 무가치한 채권을 사들이겠다고 달려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무담보 회사채는 해당기업이 파산할 경우 가치가 없어진다.

곧 상황이 이해됐다. 중요한 건 채권 자체가 아니었다. 시어스에 대한 CDS 계약 이행을 놓고 해당 채권들이 활용될 수 있다는 데 가치가 있었다. 헤지펀드들은 시어스의 악성 부채를 찾아내 염가로 사들이면서 거대한 CDS 보험금을 타갔다.

CDS를 판매한 또 다른 헤지펀드들도 앉아서 당할 수는 없었다. 이들도 적극적으로 시어스의 악성부채를 찾아냈다. 그 규모가 8250만달러어치(약 940억원)에 달했다. 이를 먼저 사들이지 않는다면, 거래상대방인 헤지펀드들이 CDS 계약에 악용할 것이었다.

조작에 가까운 거래행태를 보이는 일부 헤지펀드 때문에 CDS 시장의 신뢰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014년까지 국제 스와프·파생거래 협회 CEO였던 로버트 피켈은 BBW에 "CDS 시장이 얼마나 오래 생존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국제 스와프·파생거래 협회는 지난달 고의 부도를 막는 새로운 디폴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국제 스와프·파생거래 협회 이사였고, 현재 마르티알리스 컨설팅 대표인 존 피니는 "최근 CDS 시장을 보면 유동성을 공급받기 위해 은행이 아닌 투기꾼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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