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주 경기연구원 원장

경기도가 4월 29~30일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를 개최한다. 박람회는 기본소득 체험, 지역화폐 체험, 기본소득 국제 컨퍼런스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런 행사는 국내 최초일 뿐 아니라 세계 최초다.

기본소득이란 부자든 가난하든 주민 모두에게 일을 하든 말든 조건 없이 지급하는 현금을 말한다. 실제 미국 알래스카 주는 1982년부터 석유수입 일부를 ‘영구기금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조건 없이 주민들에게 공평하게 지급하고 있다. 성남시도 2016년부터 24세 청년 모두에게 1년에 100만원씩 ‘청년배당’을 지급하고 있는데, 이것이 경기도로 확대되어 올 4월부터 같은 내용으로 ‘청년기본소득’(명칭변경)이 지급되고 있다. 이밖에 최근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실험이 급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기본소득 실험

도대체 왜 이렇게 공짜로 돈을 줄까?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지? 공짜로 돈을 주면 누가 일을 하겠나? 저소득층에게만 지원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나? 쟁점도 많고 논란도 많지만, 기본적인 논리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유와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게다가 인공지능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되면 일자리 감소, 고용관계가 불투명한 플랫폼 노동의 확산 등으로 고용불안과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고, 저소득층의 확대로 소비수요가 저하되어 경제의 유지도 어렵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본소득은 필수적이다.

그렇다고 재원 마련을 위해 근거도 없이 부자에게서 세금을 거두자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부나 자산 중에는 원래 사회구성원의 공유자산이 있다. 대표적으로 토지와 천연자원은 현재의 소유자가 스스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천부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개발행위 자체에 따른 수익은 인정하더라도 주민 모두는 그 이익의 일부에 대해 배분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예컨대 알파고)의 기초가 되는 빅데이터가 수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세를 거두어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자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과연 기본소득을 주면 일을 안 할까? 물론 최소한이 아니라 충분하게 준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비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현재의 선별적 복지와 기본소득을 비교하는 것이다. 예컨대 기초생활보장을 받는 저소득층의 경우 일을 해서 소득이 발생하면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 금액보다 적은 임금의 일자리는 포기하게 되는 복지함정에 빠진다. 이에 비해 그 금액만큼을 기본소득으로 주면, 추가적인 소득이 있어도 기본소득은 유지되므로 오히려 노동의욕이 커진다. 실제 그동안의 실험결과를 보면, 나미비아와 인도 같은 저개발국들에서는 기본소득으로 인해 노동공급이 늘어났으며, 미국, 캐나다, 핀란드 같은 선진국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끝으로 국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주기보다 저소득층에게만 선별적으로 복지혜택을 주는 것이 복지확대에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럽 각국의 복지실태에 관한 연구를 보면, 선별복지를 실시한 남유럽의 복지규모는 정체되는 데 반해 보편복지를 실시한 북유럽의 복지규모는 확대되어 왔다는 것이다. 소위 ‘재분배의 역설’인데, 그 원인은 선별복지의 경우 재원을 부담하는 중산층 이상의 정치적 반대로 인해 복지 확대가 정체되었고, 보편복지의 경우 중산층 이상도 혜택을 받기 때문에 저항이 적었던 데 있다.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으로 가는 ‘문’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이상과 같은 논리에 근거하고 있는데, 현실에서의 구체적 내용은 각 나라나 지역의 상황에 따라 약간씩 변형되기도 한다. 예컨대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은 현금에 준하는 지역화폐로 지급되어 해당 시군 내의 영세사업체에서만 사용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지역 내 소상공인의 수입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경제적 효과도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적으로나 한국에서나 기본소득은 아직 초보단계에 있는 만큼, 앞으로 많은 어려움도 예상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선조들도 추구했던 대동세상(大同世上), 즉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