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고율의 관세폭탄이 중국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 주장한다. 연일 대 중국 강공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는 14일 각종 연구자료와 현실을 인용하며 "미국의 저소득 노동자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BBW에 따르면 2017년 1월 12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도널드 트럼프는 백악관에 입성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퇴임을 위해 짐을 싸고 있었다. 그날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했던 3명의 경제학자들은 대통령 당선인이 옹호하는 무역보호주의에 독설을 쏘아붙였다. 당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었던 제이슨 퍼먼과 위원인 제이 섐보우, 캐서린 러스다.


이들은 유럽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CEPR)의 정책포털사이트 '복스'(Vox)에 '미국 관세는 임의적으로 부과하는 역진세'(US tariffs are an arbitrary and regressive tax)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게재했다. 보고서는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관세를 더 많이 부담하지만 이는 부자들이 일반적으로 더 많은 액수의 물건을 구매하기 때문"이라며 "관세의 피해를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들은 소득 하위계층"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소득 10분위의 최상위층은 세후소득(실수령액)의 0.3%에 해당하는 관세 부담을 졌다(그래프 참조). 구매한 제품 가격에 포함된 관세다. 반면 소득 10분위 최하위층은 실수령액의 1.5%에 해당하는 관세를 부담했다.

2014년만 해도 트럼프발 무역전쟁이나 관세폭탄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그럼에도 관세는 저소득층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된 지금은 더 큰 피해가 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현재 UC샌디에고 경제학 교수로 재직중인 러스는 "미국의 모든 소득계층이 이전보다 관세를 많이 부담한다. 하지만 그 부담은 소득계층 하위로 내려갈수록 더 무거워진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저소득 소비자는 중국에서 수입한 저렴한 의류 등을 구입하는 데 돈을 쓴다. 고소득 소비자도 마찬가지로 최고급 사양의 고가 소비가전 등 중국산을 소비한다.

관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피해를 주는 이유는 소득 중 소비에 할당되는 몫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소득의 더 많은 몫을 저축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장인 케빈 하셋은 중국에 대한 고율의 관세정책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 역시 관세로 인한 미국민의 피해를 인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한 '2018 대통령 경제보고'(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for 2018)도 관세가 소비자 물가를 상승시킨다고 지적한다.

보고서 496쪽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관세에는 혜택과 비용이 있다. 연방정부는 2018년 새로 부과한 관세로 144억달러의 세수를 추가했다. 비록 지난 1세기엔 그렇지는 않았지만 세수증대는 역사적으로 관세 정책을 채택하는 추동력이었다. 세수에 덧붙여 미국 내 생산자 역시 혜택을 본다. 수입품 관세로 가격 인상의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은 소비자들의 더 큰 비용 부담, 소비 자체의 감소 등의 단점으로 상쇄된다.'

관세가 소득계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더불어 미국인과 중국인 중 누가 더 큰 타격을 입느냐도 관심사다. 미국 소비자가 관세가 붙은 상품을 쉽게 다른 상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소비자의 관세 부담은 크지 않다. 반대로 중국산 수입품의 대체물이 변변치 않다면 중국 수출업자들이 오히려 유리해진다.

1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중국 수출업자들이 우리가 부과한 고율 관세(25%)의 부담을 대부분 지게 될 것, 미국이 부담하는 건 4%포인트, 중국은 21%포인트의 부담을 진다는 게 최근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주장의 근거는 지난해 '유럽 경제재정정책 연구네트워크' 소속 베네딕트 졸러-리드젝과 가브리엘 펠베르메이어의 연구보고서다. 졸러-리드젝은 스위스 취리히응용과학대의 경영학·법학 조교수이고 펠베르메이어는 독일 킬대학 산하 세계경제연구소 소장이다.

하지만 BBW는 "트럼프가 인용한 보고서는 소수 의견"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경제연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가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된 관세의 더 많은 몫을 부담한다. 관세의 전부 또는 대부분이 소비자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같은 날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들은 미국 '국가경제분석국'(NBER) 보고서를 인용했다. 요지는 2가지다. 첫째 미국 관세 비용은 전적으로 미국 기업과 가계가 부담한다는 것. 중국이 상품 수출 가격을 전혀 인하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관세의 영향을 받는 상품과 경쟁하는 미국 자체 생산품 가격에도 관세 효과가 전이된다. BBW는 "이 대목은 중요하다. 관세가 오르면 미국 생산자들도 소비자가격을 덩달아 올려 더 많은 이익을 취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수출업자들도 관세폭탄에 신음하고 있다. 단지 중국의 보복관세 때문만은 아니다. BBW에 따르면 러시아 태생 영국의 경제학자인 아바 러너는 1936년 논문에서 '어떤 나라가 수입품 관세를 올리면, 이를 상쇄하기 위해 환율도 조정된다'고 주장했다.

수입 관세로 교역상대국이 수출한 상품에 대한 수요가 낮아지면 교역국 화폐 가치는 낮아진다. 물론 이는 시장이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 관세를 올린 나라의 화폐 가치는 상대적으로 오르면서 수출업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수출품 가격이 외국 시장에서 오르기 때문이다. 러너의 이론에 따르면 수입관세는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수출에 악영향을 준다.

MIT대 경제학자인 이반 웨르닝과 아르노 코스티노는 최근 러너의 이론이 지금의 현실에도 들어맞는지 연구했다. 2018년 연구보고서에서 이들은 '대부분 들어맞는다'고 결론 내렸다. 이들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상황에서도 사실과 부합했다"며 "당시와 달리 현재는 △글로벌 공급망 △현저한 무역 불균형 △시장지배력 △경직성 가격 또는 임금 △행동편향 △역진적 세금 등이 존재하는데도 그렇다"고 밝혔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연구보고서가 있다. 올해 1월 국제통화기금(IMF)은 '관세의 거시경제적 귀결'이라는 보고서에 회원국 151개국을 대상으로 1963~2014년의 관세와 무역정책을 조사한 결과를 담았다. 일반적인 학계의 연구보다 규모와 깊이 면에서 훨씬 방대한 것이었다. 이 연구에는 IMF 소속 다비드 푸르체리, 스와날리 A. 하난, 조너선 D. 오스트리 연구원과 UC버클리 하스경영대의 앤드류 로즈 교수가 참여했다. 이들의 연구 동기는 △자유시장에 대한 방어막이 대개 이론에 그쳤고 △거시적이기보다 미시적이었고 △연구방법 등이 낡았다는 걱정이었다.

따라서 IMF는 실증적이고 거시적이며 신식의 연구방법을 동원했다.

연구진의 결론은 '자유무역이 보호무역보다 실제로 더 우월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관세가 증가하면 중기적으로 경제, 통계측면에서 생산량과 생산성에 유의미한 감소가 나타난다"며 "관세가 오르면 실업과 불평등이 늘고 실질환율이 상승한다. 반대로 장점으로 칭송받는 '무역 균형'에 대한 효과는 극히 적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에 참여한 로즈 교수는 "우리의 연구는 참신하다기보다 방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양으로 승부했다"고 언급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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