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가락동에 책박물관 개관

어린이 동화마을에 주민 강좌도

"어떤 남자가 종로 담뱃가게에서 소설책 읽는 것을 듣다가 영웅이 크게 실의하는 곳에 이르자 … 담배 써는 칼을 들어 소설책 읽는 사람을 쳐서 그 자리에서 죽였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시문집 '아정유고'에서 '어떤 남자'를 언급한다. 저잣거리에서 구성진 입담으로 소설을 읽어주던 '전기수'다. '임경업전'을 낭독하던 와중에 영웅이 죽는 장면에서 흥분한 독자가 전기수를 찔렀다는 이야기다.

서울 송파구가 책과 사람에 얽힌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를 담은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해 선보였다. 가락동 옛 시영아파트 재개발 과정에서 기부채납으로 확보한 부지에 책을 주제로 한 국내 첫 공립박물관 '송파책박물관'을 개관했다. 민선 7기 지향점인 '책과 하나되는 송파' 일환으로 책과 독서문화를 망라한 공간을 마련했다.

송파구 가락동에 책을 주제로 한 국내 첫 공립박물관인 송파책박물관이 개관했다. 사진 송파구 제공


책박물관은 책장 속에 꽂힌 책을 형상화한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 중앙계단에 비치된 장서 1만권은 내부장식을 빛내는 소품이자 키 작은 서가에 꽂혀 의자 역할도 한다.

1층 '북키움'은 벌써 입소문이 난 놀이터. 3~5세 아이들이 책과 친숙해지도록 체험전시에 초점을 맞추는데 개관 기념으로 '나는 동화마을에 살아요'를 마련했다.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등 7개 동화 속 주인공이 돼 볼 수 있다. '날으는 양탄자'에 누워 바람과 구름 속을 나는 체험을 하거나 '브레멘 음악대' 일원이 돼 각종 악기를 연주한다. 김진형 학예사는 "작은 다락방같은 공간인 지혜의 샘에는 사서가 엄선한 책을 비치해놨는데 아이들이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2층 상설전시실에서는 '책과 독서문화'를 주제로 한 3개 전시가 진행 중이다. '향유-선현들이 전하는 책 읽는 즐거움' '소통-세대가 함께 책으로 소통하는 즐거움' '창조-또 하나의 세상, 책을 만드는 즐거움'이다.

향유는 조선시대 양반과 사대부를 중심으로 발전한 조선의 독서문화로 꾸민 공간. 책을 읽은 횟수를 기록하던 '서산'이나 양반들이 소매 속에 휴대하던 책(수진본) 등 다양한 유물은 기본. 전국을 돌며 책을 공급하던 서적중개상 책쾌 등 당시 독서환경, 세종대왕과 이 황 등 독서광 이야기를 애니메이션과 성우의 재연 등으로 풀어냈다.

소통은 1933년생 김영수와 1963년생 김정호, 1993년생 김유진 3대 가족을 설정해 1910년 이후 시기별로 출간된 책과 해당 시기 독서문화 환경을 알 수 있도록 꾸몄다. 3대 이름은 그 시기 가장 흔한 이름 가운데 골랐다. 세대간 소통이 주제인 만큼 가족이 함께 독서를 즐기는 주민들 이야기 영상을 한켠에서 상영한다.

'창조'는 작가들의 방이다. 김 훈 윤후명 황인숙 등 유명 작가들 예술혼이 담긴 물품들이 눈길을 끈다. 원고지와 필기구 카메라 사전 책꽂이 등 글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역할을 하는 소재와 도구다.

출판 기획부터 편집, 디자인과 인쇄까지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신인작가와 기획자의 대화, 출판사 대표의 일정이 담긴 수첩과 달력, 실제 출판된 책의 교정본과 최종본을 눈과 귀로 즐길 수 있고 활판인쇄 체험이 가능하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을 시작으로 주민 대상 교육강좌는 연중 운영한다. 김예주 학예사는 "박물관이 옛날과 현재를 연결하는 공간이라면 책박물관은 책과 함께 놀고 소통하는 곳"이라며 "특히 전자기기와 게임에만 매몰된 청소년들에 의미있는 공간"이라고 기대했다. 우지현 박물관운영팀장은 "학예사가 4명뿐이라 인력이 부족하다"며 "자원봉사자를 40명까지 확대, 주민들이 박물관 곳곳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주민들 기대도 크다. 딸 향유(7) 손을 잡고 박물관은 찾은 손정아(38·석촌동)씨는 "책이 어떤 곳이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좋다"며 "엄마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끝나고 난 뒤 피서 겸 찾을 거라고들 한다"고 전했다. 박성수 송파구청장은 "책박물관은 어디서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라며 "어린이 청소년들에 꿈과 희망을 주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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