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광주행 배경

"내년이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입니다. 대통령이 그때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올해 기념식에 꼭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사를 읽던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 시민들께 너무나 미안하다'며 긴 침묵으로 사과를 표했다. 광주정신의 헌법전문 포함, 진상조사규명위원회를 통한 남겨진 진실을 낱낱이 밝히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였다. 19초간의 긴 침묵 끝에 문 대통령은 또 '너무나 부끄럽다'고 자책했다.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되었다'거나 '종북 좌파들이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내 세금을 축내고 있다'는 등의 망언과 모욕에 대한 현실을 질타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대한민국 정부가 5.18을 어떻게 계승하고자 노력했는지, 역사적 폄훼에 대한 국민적 단죄의 필요성을 떨리는 목소리로 거듭 강조했다. '준비된' 말과 글에서 철저했던 문 대통령이 이날만큼은 평소와 달리 격앙된 호소와 질타를 이어갔다.

가까이서 지켜본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980년 대학 복학생 시절에 겪은 광주에 대한 통한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5.18에 대한 부채의식을 상세하게 적었다. 1975년 제적된 문 대통령은 1980년 3월 복학해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다닌 후 8월 졸업했다. 그 해 5월 복학생 신분이던 그는 거의 매일 시위에 참가했고 5월 15일 20만 여명이 모인 서울역 집회현장에도 있었다. 서울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회장단이 '서울역 대회군'으로 불리는 전면 퇴각을 결정했다. 군 투입의 빌미를 주면 안 된다는 논리였으나, 문 대통령은 '참으로 허망한 일'이라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마지막 순간 배신이 5.18 광주항쟁에서 광주시민들과 하여금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르도록 했다고 생각한다"고 통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올해 기념식 참석 여부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39년 전 경험을 들어 광주가 어떻게 고립됐는지 설명하더라"며 "최근 5.18에 대한 폄훼와 역사왜곡을 좌시하면 광주를 또한번 배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39주년 기념사에서 "광주가 피 흘리고 죽어갈 때 광주와 함께하지 못했던 것이 그 시대를 살았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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