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 성균관대학 교수

“현행 규정상 어쩔 수 없습니다.” “앞으로 관련 법률을 개정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공무원이 입에 달고 사는 표현이다. 의욕적으로 업무를 다루다가 말썽이 발생하면 도리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법률에 명확한 근거가 없으면 관행에 따라 적당히 조치하려는 태도에서 나오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와 같은 공직사회의 관행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꼈다. 행정안전부가 규정의 벽을 허물고 적극적인 행정 행위를 통해 새로운 안전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안전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안전점검 결과 공개 확대

제일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안전점검 결과 공개’이다. 정부는 2015년부터 매년 국가안전대진단을 실시해왔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점검결과를 공개하는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국가안전대진단 종료 후 공항, 항만 등 공공시설은 점검결과 공개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도 소관 부처에서 점검결과를 공개하였다. 서울, 인천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더 나아가 법령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하여 다중이용업소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시설에 대한 점검결과도 공개하였다.

점검결과 공개는 시설물을 물리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시설주와 국민 간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여 국민의 알권리와 시설주의 책임을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서 안전관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시도이다. 올해 국가안전대진단은 2월 18일부터 4월 19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점검결과가 공개된다.

점검결과 공개는 다른 영역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올해는 숙박시설, 목욕장 등과 같은 다중이용업소의 시설주가 스스로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점검결과를 업소 입구에 게시하는 안전 실천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여객선도 출항 전에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탑승자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하는 정책도 시작했다.

이밖에 국민에게 위험정보를 제공하여 사고를 예방하는 서비스도 활성화하고 있다. 매년 풍수해 기간에 둔치주차장의 차량 침수피해가 반복된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총 435대의 차량이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상습적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해에는 침수가 우려되면 주차장 관리공무원이 일일이 차주와 통화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발송하여 차량 이동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강제로 차량을 견인하는 적극적인 조치도 취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2018년에는 침수된 차량이 단 1대도 없었다.

올해부터는 더욱 체계적으로 조치할 수 있도록 주차장 진입 시 자동차 번호를 자동으로 인식하고 관련 시스템에 의해 파악된 차주에게 위험정보를 전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올해 4월부터는 고속도로에서 작업이나 사고로 인해 갑자기 정체가 발생하면 후방의 운전자에게 정체 정보를 내비게이션 음성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초기이고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하기 어려운 단계라서 우선 ‘아이나비’와 ‘맵퍼스’ 2개사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점차 보완하여 올 연말에는 대부분의 내비게이션 업체에서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 제공이 가능해 질 것 같다.

위험정보 제공해 사고 예방

이같은 새로운 도전에는 ‘법률’이 먼저 마련되어 시행되는 정책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비록 위 조치들이 세부적으로 완벽하게 설계되지 못했지만,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행정적‧법률적 기반을 완비하는 데에 시간을 소비해서는 안되고,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러한 자세는 법령이 미비하다고 하여 시도조차 하지 않는 과거의 모습과는 확실히 달라진 점이다. 법이 없어도 적극 행정으로 우리의 안전을 확고히 해나가고 있는 행정안전부의 모습이 모든 공직사회로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