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타이밍" 추경 처리 요구만 한 달새 6번

과거사·5.18 진상규명 "명운 걸라, 책임감 갖자"

임기 중반에 들어선 문재인 대통령이 내각과 정치권에 대해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 체감성과'라는 일반적 수준을 넘어 직설적 표현을 담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조직의 명운을 걸라'거나 '국회와 정치권이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온전히 국정으로 평가받는 시간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절박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성과'와 '적폐청산'의 구체적 결과물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정연설 기회도 안 준다" = 문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면서 정부의 시정연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세계적인 경제 여건의 악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라도,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국회가 힘을 더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20일 수보회의에서는' |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지난 달 25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이 한 달이 다가오도록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을 지목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 사이에 경제에 대한 걱정이 많은 만큼, 추경이 실기하지 않고 제때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조속한 심의와 처리를 요청 드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산불 등 안전분야와 경제활력 대응 등을 위한 6조 7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제출했지만 국회가 패스트트랙 이슈로 극한대치를 이어가며 중단된 상태다.

문 대통령은 '경제는 타이밍'이라며 국회의 신속한 협의를 요청해 왔다. 지난 4월 29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시작으로 이날까지 6번 '추경 처리에 협조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 대통령은 20일 추경안과 관련해 "재해대책 예산의 시급성은 정치권에서도 누구도 부정하지 않고 있다. 경기 대응 예산도 1분기의 마이너스 성장으로부터의 회복을 위해 절박한 필요성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IMF는 우리에게 재정 여력이 있음을 이유로 9조원의 추경을 권고한 바 있지만 정부의 추경안은 그보다 훨씬 적다"면서 "정부의 노력에 국회가 힘을 더해달라"고 당부했다.

◆힘 있는 자들 악행에 면죄부 단죄 = 과거사 등 역사적 진상규명과 관련해서는 발언의 강도가 훨씬 세다.

지난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장에선 5.18 진상규명 작업이 지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독재자의 후예' '유신시대 정치의식' 등 격한 용어를 사용하며 통탄했다. 5.18 진상규명 특별법을 통과시키고도 위원회 구성을 못해 출범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들며 "국회와 정치권이 더 큰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 달라"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요구는 광주의 거센 목소리와 결합돼 정치권을 압박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진상조사위원을 추천하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한발씩 양보하는 수준에서 위원회 구성방안에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통령은 대중의 관심이 쏠려 있는 장자연씨, 김학의 전 차관, 서울 강남 버닝썬 사건 등의 진상규명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 3월 18일 해당 사건의 은폐·부실 수사 의혹 등에 대해 "검찰과 경찰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진상을 규명하라"며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이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지시 후 김 전 차관에 대해서는 사실상 재수사 수준의 과정의 밟고 있고, 강남 클럽 사건도 진행 중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특권층과 권력기관의 유착행위 가능성, 힘 있는 자들의 악행에 면죄부를 주는 과거 관행과의 단절 등을 강조했다. 이른바 '생활·사회적폐'에 대한 청산 요구 수준으로 판단한 것이다.

◆'다 잘하고 있다' 자만 경계해야 = 물론 대통령의 이런 요구가 그대로 성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가 추경안 처리 등을 위해 원내지도부간 대화를 시작했고, 조만간 구체적 협의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실기 논란이 불가피하다.

여야의 극한대치가 원인으로 무조건 야당 탓만 하기도 어렵다. 과거사에 대한 진상규명 결과도 여전히 미정이다. 20일 과거사위가 밝힌 장자연씨 사건 조사결과도 온전한 진상규명과는 거리가 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나머지 두 사건도 실체적 진실과 더불어 권력기관의 고의적인 부실수사나 면죄부 시도에 대한 단죄에 이를지는 지켜봐야 한다.

한편으로 대통령이 이런 직설적 요구와 함께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자평했다.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고용이) 비관적 예측을 뛰어넘어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하반기로 갈수록 고용상황이 상당히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도 내놓았다.

정치권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는 사뭇 다르다. 야당의 '실정 비판'에 대한 반박 성격인데 자칫 '정부는 다 잘하는데 정치권이 발목 잡는다'는 인식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태곤 의제와 전략 정치분석실장은 주간전망을 통해 "(문제없다, 다 잘된다는) 언술이 반복되면 신뢰가 저하되고 말의 값이 떨어진다"며 "관료, 야당, 언론, 누적된 폐단의 문제가 있겠지만 그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장악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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