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2019년 5월 4일 독일 저명 언론지 슈피겔(Spiegel)은 ‘녹색 정전(Grüner Blackout)’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같은 내용의 기사가 슈피겔 국제판(international)에는 5월 13일날 1,2부로 나뉘어서 게재되었다. ‘1부 재생가능에너지 미래로 가는 길에서 독일의 실패(German Failure on the Road to a Renewable Future)’와 ‘2부 독일의 에너지전환은 결국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나(How Germany’s Energiewende Could Work After All’로.

독일어판이 나온 며칠 후 몇몇 보수지와 경제지는 독일의 탈원전정책이 실패했다는 논조의 기사와 사설, 칼럼을 연달아 내보냈다. 탈원전은 값비싼 실패요 ‘밑빠진 독’으로 선구자였던 독일조차 후회하고 있기에, 독일의 탈원전정책 실패를 반면교사로 해서 우리의 탈원전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곧이어 이런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다른 언론사들 기사와 시민단체와 산업통상자원부의 바로잡기 해명자료가 나왔다. 슈피겔 기사는 탈원전 비판이 아니라 동력을 잃은 듯 보이는 현 독일 에너지전환에 대한 비판이자 보다 적극적인 에너지전환 2.0에 대한 강력한 요청이었다는 것이다. 같은 기사를 두고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진정한 의미의 에너지 전환 촉구

기사 원문이 있으니 누구 말이 옳은지 읽어보면 될 일이다. 그래서 슈피겔 기사 원문을 찾아서 정독했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블로그 ‘에너지정보광장’에 완역본이 올려 져 있다(https://blog.naver.com/energyinfoplaza/221539737404). 혹시 번역본을 믿지 못하겠다는 독자는 앞서 언급한 영문 원본이나 독일어 원문을 읽어보길 권한다.

슈피겔 기사는 독일의 탈원전 에너지전환정책을 비판하기는커녕 탈원전만이 아니라 탈석탄까지 포함하지 못한 게 근본적인 실수라며 기후변화 완화까지 아우르는 보다 강력한 에너지전환을 주문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탈원전을 택한 건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그 발걸음이 어느 순간 멈춰서버렸다고 비판했다.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유능한 경영능력 부족을 질타했다.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란 말이 1980년 경 독일에서 세계 최초로 만들어져 다른 국가들에서도 에너지전환이란 의미의 보통명사로 쓰이지만 에너지전환을 성공적으로 추진해가고 있는 곳은 정작 독일이 아니라 네덜란드와 스웨덴, 노르웨이, 심지어 미국이라며 한탄했다.

슈피겔은 주장한다. 시민 반발과 갈등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정책과 정치력 부재, 부처 간 통일되지 못한 의사결정, 더디기만 한 녹색인프라 건설 등으로 인해 독일 에너지전환이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고. 독일은 지난해 전력의 35% 가량을 재생가능에너지에서 얻음으로써 재생가능에너지가 처음으로 석탄과 동등한 전력원으로 자리매김하였지만 이것은 출발점일 뿐 결코 충분하지 않다고 경고한다. 재생가능에너지 전력 확대를 넘어 건물 산업 수송 등 모든 부문을 포함하는 진정한 의미의 에너지전환을 촉구한다. 시민들도 에너지전환비용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인식하면서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에너지전환은 독일 통일만큼이나 비용이 많이 드는 프로젝트이기에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일갈한다.

외신을 직접 찾아 읽어야 하는 상황 ‘씁쓸’

탈원전을 비판하는 글들에 인용된 구절들이 모두 슈피겔 기사 원문에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글을 보면 슈피겔 기사의 비유와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달리 해석하면서 기사 원문을 맥락에서 떼어내 자신들의 주장에다 부분부분 가져다 붙인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탈원전 비판으로 슈피겔의 기사를 인용한 한글 기사와 칼럼, 사설을 거꾸로 독일어나 영어로 번역해서 그 기사를 작성한 슈피겔지 기자들에게 읽히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다르게 인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원 기사의 의도를 알고도 달리 인용했다면 그건 더 문제다. 전자는 무지요 후자는 왜곡이다. 이제 해외 기사를 인용하는 언론보도를 보면 해외 기사를 직접 찾아 읽어야 하는 걸까? 이런 상황이 씁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