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만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요즘 들어 2002 한일월드컵이 그립다. 우리 모두 하나 되어 4강 신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답답하다. 지난 1분기 GDP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수출은 작년 12월부터 5개월째 감소중이다. 경제성장률 전망 하향 조정과 수출 감소가 이어질수록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가 깊어진다. 우리나라는 수출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 격화, 노딜 브렉시트 우려 등으로 전세계 교역규모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무역환경이 어려워지면 수출기업들은 가격을 낮추거나 해외 바이어의 구매자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외상 기간을 늘린다. 이렇게 되면 바이어 대신 늘어난 외상 부담을 우리 기업이 떠안아, 결제가 될 때 까지 현금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인지 ‘외상 수출로 묶인 자금을 어떻게 해결할까?’, ‘바이어가 외상대금을 결제할까?’ 등 근심 걱정을 토로하는 기업들이 많다.

수출기업 열 중 아홉은 중소기업

대기업은 버틸 여력이 있다. 기초 체력이 돼 줄 사내 잉여금도 있고, 신용이 양호하여 자금을 빌리기도 상대적으로 쉽다. 풍부한 인적자원과 탄탄한 네트워크가 외부 충격을 지탱해줄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제품군과 다각화된 시장이 있어 경기 변동에 대응하기도 수월하다.

반면 중소기업은 사장과 종업원 몇 명만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자금력과 조직력에서 대기업에 비할 바 못된다. 부족한 자원을 최대한 끌어 모아 해외 수입자를 찾고 수출계약을 따낸다. 수출계약을 체결해도 은행 문턱이 높아 자금 마련이 쉽지 않다. 수출물품을 제조하여 선적을 마쳐도 수출대금 회수까지 또 자금이 묶인다. 행여나 수입자가 도산하거나 클레임을 제기하면 투입된 자원과 노력은 허사가 된다. 여기에 금융기관의 대출금 회수까지 더해지면 기업의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

별로 주목받지 못하지만,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중요한 축이다. 수출은 반도체를 비롯한 대기업의 몫일 뿐, 중소기업은 이들의 하청이나 내수에 집중한다는 인식이 많다. 하지만 수출기업 열 중 아홉은 중소기업이고,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5을 담당한다. 지난해 기업수와 금액 모두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는 화려한 공격수 못지않게 안정적인 수비수의 역할도 컸다. 중소기업은 축구의 수비수와 흡사한 면이 있다. 화려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수출 역군이다. 중소기업의 무게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산업 구조적 측면에서 역할도 크다. 아무리 큰 대기업도 여러 협력업체와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고, 연결고리 끝에는 어김없이 중소기업이 자리한다. 움직임이 둔한 대기업을 대신해 발빠르게 고민을 해결해 주기도 한다. 그간 반도체가 이룬 화려한 성과도 중소기업의 묵묵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중소기업이 휘청대면 대기업도 온전하기 어렵다. 축구에서 수비가 불안하면 제대로 된 공격이 어려워지는 현상과 마찬가지다.

수출활력 제고대책 시행 위해 추경 예산안 마련

지난 3월 정부는 수출활력 제고 대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중소기업의 부족한 점을 메워 생존력과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우선 시급한 자금압박부터 해소한다. 수출대금을 조기에 현금화하거나 수출계약 기반으로 대출을 받으려는 중소기업에 무역금융을 확대한다. 수출대금 회수 불안을 덜 수 있도록 수입자 신용정보를 제공하고 무역보험 한도도 높인다. 해외 우량 수입자 초청 수출상담회를 개최하여 믿을만한 거래처 발굴도 돕는다. 수출 중소기업의 부족한 역량을 채워줄 수 있는 효과적인 처방전이 되리라 믿는다.

이같은 수출활력 제고 대책 시행을 위해 추경 예산안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정책의 생명은 타이밍이다. 정책 집행에 속도가 붙을수록 어려움에 빠진 중소기업에 더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들을 향한 관심과 지원이 움츠러든 수출활력을 재충전할 수 있도록 너나없이 한뜻으로 힘을 모을 때다. 공격수와 수비수, 코칭스태프, 서포터즈가 하나 되어 2002년 4강 신화를 이룬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