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균 농협 농업박물관장

6월인데 벌써 기온은 여름이다. 6월은 망종 하지 절기가 있는 달이다. 여름농사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여름농사의 최대 골칫거리는 잡초다. 장마와 무더위로 풀이 왕성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름농사를 잡초와의 전쟁이라 하지 않았던가. 옛 농가의 월별 모습과 할 일을 노래한 농가월령가 유월령에는 ‘날새면 호미들고 긴긴해 쉴 때 없이, 집터 울밑 돌아가며 잡풀을 없게 하소’라 하여 풀뽑기를 권장하고 있다. 속담에 ‘호미 끝에 백가지 곡식이 달렸다’하여 풀뽑기가 풍흉을 결정짓는다고 했다.

이러한 잡초제거에 안성맞춤인 도구가 바로 호미다. 요즘에는 농약이나 기계로 손쉽게 잡초를 제거하지만 예전엔 주로 호미로 했다. 농부들은 집을 나갈 때도 으레 호미를 허리춤에 차고 나갔다. 논밭의 잡초 뿐 아니라 주변의 풀을 뽑기 위해서였다.

영주 대장간서 만든 호미 아마존에서 원예부문 인기품목 10위권 진입

호미는 풀뽑는데는 물론 흙을 고르고 뒤집고, 구멍난 논둑을 메우거나 심지어 길가의 개똥 치우는데도 쓰일 만큼 다용도였다. 그래서 집집마다 서너개쯤은 가지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호미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유적지에서 호미로 보이는 도구들이 다수 출토되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가사인 사모곡에는 호미날과 낫을 비유하며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표현한 대목도 있다. 조선시대 농사와 관련된 글들을 기록한 ‘농사직설’ ‘산림경제’ ‘훈몽자회’ ‘임원경제지’ 등의 문헌에도 호미를 뜻하는 鋤(호미 서) 鉏(호미 서) 錤(호미 기) 鎛(호미 박) 등이 기록돼 있다. 대중가요 가사에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앞산노을 질 때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가 있는데 이를 통해 호미가 농사의 일차적 도구였음을 알 수 있다. 씨름의 기술에 호미걸이가 있고 호미의 구부러진 모양을 닮았다 하여 호미고개라 부르는 곳도 많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을 통해서는 호미가 쉽고 간단하게 쓰이는 도구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흔하게 사용해 왔던 호미가 영농기계화로 텃밭농사 용도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최근 다시 주목받는 일이 발생했다. 경북 영주의 대장간에서 만든 호미가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에서 원예부문 인기품목 10위권에 진입한 것이다. 국내에서 하루 여남은 개 팔리던 것이 지금은 최대 2000여개까지 수출이 된다 한다. 이를 국내 언론들이 다루기 시작하면서 호미는 일약 스타 농기구가 되었다.

우리호미가 서양인들에게 호평 받는 이유는 작업의 고효율성을 넘어 인체공학을 고려한 인간적인 도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모종삽만 써오던 서양인들에게 우리 호미는 어떤 작업에도 쓸 수 있는 만능 도구인 것이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이야기들이 아마존 홈페이지에 후기로 많이 올라와 있다. ‘놀라운 제품이다. 너무나 인체공학적이다. 땅을 파거나 온갖 잡초를 제거하는 데는 물론 땅속의 나무뿌리를 잘라낼 수도 있다. 나의 정원사가 감탄했다. 최고의 정원가꾸기와 농사도구다’ 등 찬사의 글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일찍이 소설가 박완서는 호미예찬에서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감탄을 새롭게 한다’고 했다.

농부의 애환 녹아있는 호미 통해 옛 농경문화 추억 반추

재조명 받고 있는 우리호미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조그마한 호미전시를 열고 있다. 영주대장간을 비롯한 전국의 대장간을 찾아 호미를 직접 구입하고 호미이야기를 수집 정리하였다. 농기구 가운데는 드물게 호미에는 왼손잡이용 왼호미가 따로 있다. 이는 소수자를 배려한 대장장이의 따뜻한 마음에 기인한 것이다. 호미는 날이 닳으면 벼리어 재활용하고 호미로 뽑은 풀은 거름으로 사용하는 등 지극히 알뜰하면서 자연친화적인 도구이다. 이런 호미에 깃든 농심이 우리호미를 한류화로 이끈 원동력이자 밑거름이 된 것이다. 농부의 애환과 땀, 눈물이 녹아있는 호미를 통해 옛 농경문화의 추억을 반추하며 사람중심의 장인정신도 되새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