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소비자분쟁조정 절차에 간여하나 … "금융당국 수장이 진행 중인 사건에 부적절"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건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부정적으로 발언한 것과 관련해 금융위원회의 권한강화를 위한 사전포석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최 위원장의 발언 시점이 키코 사건의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다 감사원이 금감원의 소비자보호 분야에 대한 감사를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최 위원장은 10일 마포혁신타운 착공식 이후 기자들과 만나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이달말 키코를 안건으로 올려 심의하는 것과 관련해 "키코가 분쟁조정의 대상이 될수 있을지 의문이 들긴 한다"고 말했다.
금융그룹 CEO전문가 간담회 주재하는 최종구 위원장 | 최종구 금융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그룹 최고경영자(CEO)·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삼성·한화·미래에셋·교보·현대차·DB·롯데 등 통합감독 대상 7개 금융그룹의 대표회사 대표이사와 교수, 변호사 등 민간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금융당국의 수장이 금감원의 조사가 진행 중인 사건을 미리 판단한 듯한 뉘앙스를 주는 상당히 이례적인 발언이다. 마치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법무부장관이 '기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같은 발언은 독립적이고 중립적으로 진행해야 할 수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금기시되고 있다.

금감원이 수행하는 검사와 조사 역시 결과의 신뢰성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는 부적절하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특히 금융당국 수장의 입장에서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듯한 발언은 부적절하다"며 "더 이상 조사를 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당혹스러워했다.

키코 조사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사실상 합의한 상태에서 시작됐다. 금감원이 피해기업 전체를 전수조사하지 않고 법원에서 판단한 사안은 조사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을 전제로 금융위도 키코 조사에 합의했다. 당초 윤석헌 금감원장은 키코 사건을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금감원에 접수된 4개 기업에 대한 조사로 국한해 진행했다. 그렇게 정리된 문제를 최 위원장이 다시 끄집어내 금감원 키코조사의 신뢰성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최 위원장은 "당사자들이 받아들여야 분쟁조정이 이뤄지는 거라 (분쟁조정위가) 어떻게 할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은행들이 외환파생상품인 키코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있었다고 보고 피해액의 일부를 배상하는 안건을 분쟁조정위에 이달말쯤 상정할 예정이다.

최 위원장의 발언이 분쟁조정위의 배상결정에 대해 은행들이 불복할 수 있는 빌미를 줬다는 해석도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위원장 조차 금감원의 키코 조사에 부정적인데, 분쟁조정위가 배상권고를 하면 은행들이 받아들이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융위가 금감원의 분쟁조정에 간여하기 위한 전초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감사원이 금감원의 '금융소비자 보호' 분야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 있는 시점에 최 위원장의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즉시연금 문제로 금융회사와 마찰을 빚었는데 당시에도 금감원은 분쟁조정위의 결정을 토대로 과소지급한 보험금을 소비자에게 지급하라고 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는 금융회사에 대한 다른 제재절차와 달리 안건이 금융위로 올라가지 않고 금감원에서 최종 결정되는 구조다. 금융위는 올해 분쟁조정위 위원 구성 문제와 관련해 금감원과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이 감사결과를 통해 분쟁조정위 구성과 절차, 운영방식과 관련해 문제제기를 할 경우 금융위가 분쟁조정위 업무를 가져가거나 현재 방식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게 금감원 일각의 우려섞인 시각이다.

최 위원장의 발언이 키코 사건에 한정된 것인지, 소비자보호 분야에 대한 금융위의 권한 강화 움직임을 드러낸 것인지는 감사원 감사결과 이후 금융위의 행보로 확인될 전망이다.


■ 키코 사건은
2000년 중반 은행들이 환헤지옵션상품 키코를 중소기업에 판매한 이후 2008년 외환위기로 환율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고 줄도산한 사태를 말한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등락할 경우 기업이 미리 정한 환율에 따라 외화를 은행에 되팔 수 있도록 해 기업과 은행이 환위험을 상쇄하는 파생상품이다. 하지만 미리 정한 수준 이상으로 환율이 오르면 기업은 계약한 외화의 두 배를 구입해 갚아야 해서 환율급등에 대한 피해를 기업들이 입었다.

■ 키코 사건 법원 판결은
키코상품에 가입한 기업들은 은행들을 상대로 부당이득금반환 소송을 냈지만 모두 패소했다. 기업들은 키코 계약이 불공정행위 등으로 무효이거나 사기·착오로 인한 계약이라서 취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2013년 9월 기업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키코가 정상적인 금융상품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상황 등에 비춰 환헤지 목적에 적합하지 않는데도 계약 체결을 권유했거나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은 설명의무 위반행위는 은행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한다고 밝혔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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