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범죄객체로만 봐"

삭제거부취소소송 제기

검찰이 수형자 등으로부터 채취한 디엔에이정보의 삭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시민단체와 법조계의 주장이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국금속노동조합 등은 "국가가 개별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일률적으로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사망 시점까지 정하는 것은 최소침해 및 법인균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11일 밝혔다.

현행 디엔에이법 제13조에 따르면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를 제외하곤 수형인 등이 재심에서 무죄, 면소, 공소기각 판결 또는 공소기각 결정이 확정된 경우 또는 구속피의자가 검사로부터 혐의없음 처분을 받거나, 법원의 무죄, 면소, 공소기각 등의 판결이 확정된 경우에 한해 삭제를 인정하고 있다.

민변 등은 11일 H씨에 관한 대검찰청의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 삭제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H씨는 주식회사 케이이씨 소속 노동자로 노사분쟁 당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으로부터 디엔에이감식시료 채취 요구서를 받았다. H씨를 비롯해 채취대상이 된 케이이씨 노동 조합원 48명은 다수가 평조합원으로 직장폐쇄의 철회를 요구하며 공장 점거 농성을 벌였다.

디엔에이법이 정한 대상범죄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디엔에이가 채취되자, 케이이씨 노동자들은 2016년 헌법소원심판만을 청구했고, 지난해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DNA감식시료 채취 영장' 발부 절차를 규정한 디엔에이법 제8조가 채취대상자의 방어권을 규정하지 않아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했다"며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헌법재판소의 해당 결정 이후 H씨는 대검찰청에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돼 있는 본인의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삭제해 줄 것을 신청하는 민원을 제출했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사망, 무죄, 면소 등 디엔에이법에서 정한 삭제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해당 민원에 대해 거부처분을 했다.

민변 등은 "디엔에이는 지문 등 다른 신원확인정보나 의료정보 등 다른 민감정보와 비교해도 고도로 민감한 개인정보로 간주된다"며 "검찰은 수년에 걸쳐 파업 노동자와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물론 노점상 철거에 항의하는 노점상 활동가를 비롯, 학내 민주화투쟁을 이유로 대학생들에게도 지속적으로 디엔에이 채취요구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검찰청 관계자는 12일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디엔에이법에 채취된 디엔에이를 삭제할 수 있는 사유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이 있어 그에 따른 것"이라고 답변했다. 법률의 개정이 없는 한 채취된 H씨의 디엔에이 정보를 삭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변 등은 "위법성의 정도를 판단하지 않고 재범의 위험성에 대한 고려 없이 무분별하게 이뤄진 검찰의 디엔에이감식시료 채취 및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국가 데이터베이스 수록은 헌법재판소가 지적했듯이, 디엔에이 채취대상자를 범죄수사 내지 예방의 객체로만 취급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변 등은 이번 행정소송에서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삭제를 규정하고 있는 디엔에이법 제13조 등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도 신청할 예정이다.

안성열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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