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바람 방향이 바뀌면 벽을 쌓는 사람도 있고 풍차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중국 속담이다. 이 속담은 바람 방향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벽을 쌓는 사람보다 최악은 바람 방향 전환에 무관심하거나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벽을 쌓거나 풍차를 만들 겨를도 없이 속수무책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지속가능금융(sustainable finance)과 관련한 풍속이 매우 빨라지고 있다. 지속가능금융은 투자나 대출 등의 의사결정을 할 때 재무적 성과뿐만 아니라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하여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고자 하는 포괄적인 접근방식이다.

기후변화 리스크를 금융 안정성에 반영

바람도 이전에 불었던 지속가능금융 바람과는 결이 다르다. 버텀업(bottom up)에서 시작한 자발적 성격의 바람이 아니라 제도화 또는 법제화를 염두 해 둔 탑다운(top down)의 강제적 성격이다. 지속가능금융 중에서도 환경 영역, 특히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과 관련한 기후금융(climate finance)에서 이러한 경향이 확연하게 나타난다. 기후변화가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생존기반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2018년, 10개 과제로 구성된 지속가능금융 액션플랜을 수립했다. EU의 지속가능성 향상을 위해 금융이 기여할 수 있도록 시장친화적인 제도 인프라 구축이 이 액션플랜의 목적이다. EU는 기후변화 대응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선정해 금융기관이 기후변화 리스크를 반영하고 저탄소 프로젝트에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 도입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기후금융과 관련한 바람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나는 이니셔티브는 ‘기후 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 포스’(TCFD, 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와 ‘녹색금융네트워크’(NGFS, Network of Greening Financial System)다.

TCFD의 핵심은 금융기관들이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재무적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지배구조, 전략, 리스크 관리, 지표 및 목표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점이다. 기후변화 등 환경과 관련한 전 세계 금융투자기관의 정보공개프로젝트인 CDP(옛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의 노하우와 성과에 기반한다.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의 요청으로 금융안정위원회(FSB)가 태스크포스를 만들었고 2017년 말 권고안을 내놓았다.

NGFS는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과 금융감독기관 및 국제결제은행, 세계은행 등 40여개 기관이 가입해 활동하는 녹색금융 네트워크다. 4월 NGFS는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기관이 환경・기후 이슈를 다루는 방식과 관련한 6개 행동 권고안을 발표했는데, 첫번째는 기후변화 리스크를 금융안정성 모니터링에 반영하라는 내용이다.

지속가능금융에 관심 기울여야

TCFD나 NGFS의 탄생은 ‘기후변화’가 2008년처럼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리스크라는 점을 주류 금융당국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부동산 자산가치에 대한 왜곡된 가치평가에서 비롯되었다. 마찬가지로 자산가치 평가에 기후변화 리스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면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석탄발전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는 금융기관의 자산가치는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기후 시나리오 1.5도를 적용하면 그 가치는 폭락할 수밖에 없다. 버블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아직 글로벌적인 지속가능금융, 기후금융이라는 바람의 방향에 무관심하거나 읽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세계 3위의 연기금인 국민연금기금의 CIO조차 TCFD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금융당국은 최근에야 그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류 금융기관 대다수 CEO는 여전히 관심 밖이다. 벽도, 풍차도 바람에 관심이 있고 알아야 쌓고 만든다. 최소한 속수무책 당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