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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은행이 떠난 자리, 그림자금융이 치고들어왔다

뉴욕타임스 "위험한 대출관행 부활 … 경제 침체시 손실 급증 우려"

등록 : 2019-06-13 11:49:44

무분별한 모기지담보 대출이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뒤흔든 지 10년, 미국에서 '그림자금융'을 통한 위험한 대출관행이 부활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2일 진단했다. 그림자금융은 은행과 비슷한 기능을 하면서도 은행과 같은 엄격한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는 금융기관과 그러한 금융기관들 사이의 거래를 일컫는 말이다.

NYT에 따르면 그림자금융은 모기지와 자동차대출, 기업대출 등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신용의 주된 원천이 됐다. 미국의 그림자금융 규모는 15조달러로, 대략 세계 5대 경제국인 영국의 금융시스템 규모와 비슷하다. 전통적 의미의 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방·주정부의 엄격한 규제에 직면해 고위험 대출시장에서 서서히 발을 뺐다.

하지만 그림자금융은 적잖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위험한 행동에 걸맞은 규제, 위기에 대비한 자본쿠션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계 경영자들과 연방준비제도(연준) 제롬 파월 의장 등은 '비은행 금융권(그림자금융)이 주도하는 위험한 대출관행이 많아졌다.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 금융학 교수인 애밋 세루는 NYT에 "안정적인 금융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은행을 강력히 규제해왔다. 이제 전통적인 은행시스템은 리스크를 떠안으려 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은행이 물러간 자리에 그림자금융이 치고들어왔다"고 말했다.

모기지시장, 비은행 금융권이 절반 이상 점유

미국의 모기지시장에는 대략 5000만개의 주거용 부동산이 존재한다. 금액으로는 10조달러에 달한다. 전 세계 소비자 대상 대출시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최근 모기지대출은 퀵큰론, 론디포, 캘리버홈론 등과 같은 비은행 금융기업들이 주도한다. 모기지업계 소식지인 '인사이드 모기지 파이낸스'에 따르면 2009년 모기지대출시장 점유율이 9%에 불과했던 이들 기업들은 2017년말 기준 55%를 장악하며 급성장했다.

낮은 신용등급 또는 소득 대비 부채율이 높은 주택구매자에겐 분명 좋은 징조다. 각종 모기지대출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고객을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저지에 사는 24세 마케팅 매니저인 앤드류 다우니는 2개의 침실이 달린 콘도를 구입하려 한다. 그는 대출을 받기 위해 자신의 신상정보를 '렌딩트리닷컴'에 입력했다. 그러자 비은행 모기지 대출업체 중 가장 규모가 큰 '퀵큰론'에서 즉각 전화가 왔다. 다우니는 "전혀 과장하지 않고, 정보를 입력한 지 10초 뒤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퀵큰론은 30년 만기 18만5000달러(약 2억2000만원) 규모의 모기지대출에 고정금리 3.875%를 제시했다. 일반 시중은행 금리보다 15%가 저렴했다. 그는 여러 업체의 견적을 비교한 끝에 3.625%를 제시한 캘리포니아 소재 비은행 모기지전문대출업체 '페니맥'에서 돈을 빌렸다.

다우니는 "시중의 어떤 은행도 내게 대출을 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달 뉴저지주 유니온시티에 있는 콘도에 입주한다.

장점만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모기지 전문대출 업체들은 은행처럼 촘촘한 규제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완충자본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충분한 자기자본이 없다면 실물경제 또는 주택시장이 침체할 경우 기업의 생존력이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업체로서도 할 말은 있다. 이들 업체는 "은행들처럼 안전성과 건전성과 관련해 연방정부 차원의 규제를 받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소비자금융보호국은 물론 주정부로부터 감독을 받는다"고 항변한다.

퀵큰론 CEO인 제이 파너는 "우리의 임무는 책임감 있게 적절한 금액을 대출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가이드라인을 따라 영업한다"고 말했다.

위험천만한 기업대출 시장

모기지뿐만 아니다. 월가는 금융위기 이전 유행했던 금융공학을 되살려 개조했다. 고위험 대출을 모아 덩어리로 포장한 뒤 잘게 잘라 외관상 안전한 투자상품으로 바꾸는 것. 이른바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으로 불리는 물건이다.

이는 과도한 부채를 지고 있는 기업들의 '레버리지론'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구조화증권이다.

레버리지론은 투기등급 이하 기업이 은행 대출을 받을 때 담보를 맡기고 변제권에 있어서도 가장 우선하는 대출이다. 100~225개 레버리지론을 묶어 신용보강과 상환순위별로 신용등급을 부풀리는게 특징이다. 즉, CLO는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촉발한 CDO(부채담보부증권)과 구조가 유사하다.

최근 몇년 동안 월가 자금이 CLO시장으로 급격히 쏟아졌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다. CLO는 대개 변동금리를 가진 대출채권을 사들여 구조화한다. 기준금리가 오를 때 고정금리보다 더 나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CLO의 기초자산이 되는 레버리지론에 대한 보호장치가 미흡하다는 점이다(내일신문 2018년 11월 8일 '연준, 1.3조달러 레버리지론 시장에 경고' 참조).

대표적으로 이자지급과 관련해 지켜야 할 의무조건을 삭제한 '약식계약'(Covenant-Lite) 레버리지론이 전체 레버리지론의 80% 수준이다. 또 레버리지론의 하위 갈래인 '인크리멘탈 론'(Incremental Loan)의 경우 선순위 채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손쉽게 추가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담보 순위에서도 선순위 채권자와 동일한 자격을 부여하는 대출이다. 연쇄적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할 때 대출인들이 보호받기 힘들어진다는 의미다.

NYT는 "물론 현재 디폴트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하지만 경제가 결국 둔화돼 디폴트가 증가할 때 대출담보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는 투자자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CLO와 레버리지론 시장에 대한 경고가 늘어나고 있다.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연준은 위험한 회사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무디스 등 신용평가사들은 "이달 들어 대출시장에서 돈을 빌리려는 투기등급 기업의 숫자가 기록적으로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소규모 민간 대출시장도 위태

레버리지론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충분히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최악의 상태에 몰린 기업들이나 규모가 너무 적은 기업들은 레버리지론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이 눈을 돌리는 곳은 '비상장기업 투자전문회사'(BDC·Business Development Companies)다. BDC는 1980년대부터 생겼다. 당시 의회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없는 비상장 중소기업들도 자금을 얻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면서 생긴 투자사다.

하지만 BDC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투자펀드다. 높은 금리를 제시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겐 호소력이 높다.

빌리는 측은 신용이 낮고 파산 리스크가 높은 기업들이다. 예를 들어 휴대폰 보호케이스 제조업체인 '펠리컨프라덕츠'는 BDC에 연 10.23% 고율이자를 지급하고 돈을 빌린다.

투자자를 유혹하는 또 다른 매력은 BDC가 이익의 90% 이상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한 법인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주주들은 자신의 소득에 대해서만 세금을 낸다.

하지만 '개인퇴직계좌'(IRA)와 같은 과세유예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이마저 내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BDC 투자자는 이익을 크게 늘릴 수 있다.

자연스레 BDC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웰스파고시큐리티 등에 따르면 2005년 100억달러 수준에서 지난해 1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BDC에 내재된 리스크 역시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BDC가 대개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중소기업 대출증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BDC 투자의 벤치마크로 활용할 공정가치가 확립돼 있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또 BDC는 수익을 확대하기 위해 레버리지를 활용한다. 즉 거액을 빌려 파산 위험이 높은 고위험 중소기업에 대출한다는 의미다. NYT는 "이런 사업모델은 경기가 좋을 때엔 수익을 높여준다. 하지만 상황이 반전되면 그만큼 손실이 급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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