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력 없는 '여름철 물놀이 안전 종합대책'

"여름엔 물조심, 겨울엔 불조심하라는 뻔한 이야기네요" 대전 한 초등학교 교장이 14일 발표한 '정부합동 물놀이 종합대책'을 비판했다. 종합대책이 전국 최초라고 하지만 과거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질타했다. 특히, 대책에 대한 실행력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아이들을 내보내기가 불안하다고 말했다. 어디까지가 '물놀이'인지 정부가 분명한 개념조차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해수욕장에서 조개를 잡다 이안류에 휩쓸렸을 경우 물놀이사고에 포함되는지 안되는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조개를 잡거나 낚시를 하다 사고를 당한 경우는 '어업행위'에 해당된다는 게 정부(해경, 행안부)의 유권해석이다. 이럴 경우 물놀이 사건·사고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부가 국정감사나 사고발표에서 '물놀이' 사고 사망자 숫자를 일부러 줄이기 위한 꼼수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익사자 숫자를 줄이기 위한 이러한 조치는 오랜기간 관행처럼 이어져온 관료사회 관습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내일신문 6월10일 보도, "절반은 혼자 물에 못 떠 … 사고 나면 90% 사망">
포항 칠포해수욕장에서 생존수영을 배우는 대구지역 중학생들. 이안류 대응, 조류와 파도타기, 물속에서 숨 쉬고 오래 버티기, 체온유지법 등을 배웠다. 사진 전호성 기자


13일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지난해 강 호수 바다에서 발생한 익사자 전체 사고 데이터가 없다"고 말했다. "해경과 119에서 자료를 받는데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7월과 8월의 사고 현황만 받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14일 행안부가 발표한 물놀이 사고 자료(지난해 물놀이 사고 32건에 사망자는 33명)가 부실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됐다. 지난 한해 연안해역과 갯벌, 갯바위, 무인도서에서 놀다 추락이나 고립 등 사망자는 124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현장 교사들은 "이들에게는 사고 시 자가생존법(생존수영)이 필요 없는지, 왜 물놀이에 해당되지 않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한다.

중앙교육연수원의 생존수영 실기교육에 참여한 교사들. 사진 전호성 기자


◆실행력 없는 정부종합대책= 정부는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물놀이 안전 정책협의체'를 구성했다. 해양수산부, 문화체육관광부, 환경부, 교육부, 해양경찰청, 소방청 등 7개 부처가 이름을 올렸다. 핵심 내용은 위험지역에는 들어가지 말 것, 반드시 구명조끼를 착용할 것, 사고가 많은 지역에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예방캠페인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이다. 지역별로도 현장 상황에 맞는 해수욕장협의회, 지방연안사고 예방협의회 등 지자체, 관계기관 및 민간단체가 참여하는 협업체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정부가 지켜줄테니 여름철 물놀이를 편안하게 즐기라는 것이다.

강이나 바다, 계곡 등 물놀이 지역 1202개소에는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를 비치하겠다고 설명했다. 물놀이 위험구역에는 출입금지 경고표지판을 설치하고 취약시간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매년 되풀이되는 안전대책이다. 안전부주의와 수영미숙을 가장 큰 사고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강이나 바다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정책 대부분 '하지 말 것'을 중심으로 안내했다. 깊은 곳에 들어가지 말고, 구명조끼를 착용, 음주수영금지, 지정된 장소에서만 물놀이를 즐기라는 것이다. 사고 시 구조는 또 119 소방과 민간단체에게 떠 넘겼다. 소방에 사고대응을 위한 구조대 4400여명을 편성해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초등 생존수영을 강조했다. 사고에 대비 현장 교육을 주문했지만 17개 시도교육청 중 단 한 곳도 수영장을 벗어나 강이나 바다에서 실전 교육을 하는 곳은 없다. 교육현장에서는 '생존수영'이라는 단어에 혼란만 가중된다며 '자가생존훈련(스스로 구조법)'으로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했다. 생존수영을 교육과정이 아닌, 안전부서에서 담당해야 한다는 게 현장교사들의 주장이다. 그동안 정부와 교육청에서 실시한 생존수영이 효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포항 칠포해수욕장에서 생존수영을 배우는 대구지역 중학생들. 사진 전호성 기자


◆실행력 담보할 정책 내놔야 = 실제 정부와 시도교육청은 세월호 사고 이후 5년 넘게 막대한 예산을 들여 '생존수영'을 강조했다. 하지만 실행력이 부족한 정부와 시도교육청은 학생과 국민들의 아까운 목숨을 놓쳤다. 개념정리도 못하고, 실행력도 없는 정부가 정책만 쏟아내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좀 더 실행력이 높은 정책을 만들고 반드시 현장에 정착이 되도록 촘촘한 설계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 민관이 함께 전문가 양성에 나서고 이를 선진국처럼 '수영등급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존수영의 경우, 교육청은 수영장 부족을 탓한다. 학교 자체적으로 보유한 수영장에 지자체 수영장을 빌려 쓴다 해도 전체 초등학교 6182교 대비 10%를 넘지 못한다. 그렇다고 모든 학교에 수영장을 만들 수는 없다. 교육부는 유럽학교처럼 이동이 편리한 조립식이나 튜브식 수영장 활용을 가장 적합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학생들의 재능에 따라 '자가 생존법→영법교육→타인구조'까지 이어지는 교육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타인구조가 가능한 단계까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이수하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학교도 있다.

일본은 모든 초등학교에서 운동이 아닌 생존수단으로 모든 학생이 인명 구조 자격증을 딸 때까지 '자가훈련법(생존수영)을 가르친다. 프랑스나 영국 등은 5분에서 10분간 쉬지 않고 수영을 하거나 물에 떠있는 훈련을 한다. 특히, 생존수영 훈련은 수영복이 아닌 바지와 셔츠, 운동화를 착용하고 가르친다. 사고 시 몸이 알아서 대응방안을 기억하도록 실기와 체험중심으로 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13일 대구 중앙교육연수원 연수에 참가한 한 고교 교장은 "강이나 바다로 놀러간 학생과 국민들의 사망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데도, 매년 비슷한 정책만 내놓는 정부부처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정책을 수립하기 전에 꼭 현장을 찾아보고 다양한 의견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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