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미 미츠루 지음/ 류순미 옮김/ 더봄/ 1만7000원

기존 거대 기업은 후발 기업이 두각을 나타내기 전 선제공격을 통해 경쟁자를 물리칠 수 있다. 이를 위한 연구·개발 능력도 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혁신을 이뤄내지 못하고 새로운 기술을 가진 기업의 기술에 시장지배력을 잠식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기존 기업들이 '자기잠식'에 의한 매출 감소를 싫어해 예전 제품의 성능을 개선하는 기술에 집착할 뿐 소수의 고객들에게만 인정받는 새롭고 급진적인 기술에는 인색, 신기술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를 등한시하다 결국 새로운 환경의 도래와 함께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직면하는 이노베이터의 딜레마다.

이가미 미츠루 예일대 교수는 "기존 기업이 부족했던 것은 '능력'이 아니라 '의욕'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조적 '자기 파괴'가 답"이라는 결론으로 혁신가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풀어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기잠식'과 '선제공격' '능력 격차'라는 세 가지 경제학적 개념을 주로 이용한다. 분석 수법은 '데이터 분석' '비교 실험' '시뮬레이션' 등 세 가지. 그 중에서도 특히 '자기잠식'에 주목했다. 실제 기존 기업의 내부에서는 '주력 부문'에 대항하는 혁신을 일으킬 인센티브(유인)가 부족하다. 이노베이션이 성공했을 때 기존에 있던 자사의 주력 부문이 무너지는 '자기잠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실제로 저자가 매년 봄 예일대학 경제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는 이노베이션 경제학 수업의 주요 내용이다. 후반에 나오는 실증분석은 시카고대학의 학술지 2017년 6월호에 게재된 전문적인 연구논문을 일반인을 위해 풀어쓴 것이다. 마치 미시·거시·계량 경제학의 응용사례 혹은 산업조직론이나 이노베이션론의 부교재 같다. 이론과 실증의 융합 접근법인 구조 추정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입문서로 이용해도 좋다.

그런데 학술서나 교과서라기보다는 수필이나 에세이에 가깝다. 경제학을 주로 접해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썼다고 한다. 수학공식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느슨한 구어체로 쓴 글이다. 소풍가는 기분으로 읽어보자.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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