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계약직 처우개선 조례 '노노 갈등'

박 시장 정책과 방향 일치, 거부 힘들어

노동단체 "동일노동·동일임금이 기준"

박원순 서울시장의 노동존중특별시 정책이 내부 갈등에 부닥쳤다. 박 시장 노동정책 상징인 비정규직 정규직화, 그 결실인 무기계약직 처우 개선 문제가 기존 공무원 반발에 직면하면서다. 노노 갈등 심화가 자칫 노동자와 일자리 모두에 불리한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7일 서울시와 시의회에 따르면 시의회 민주당이 제기한 '서울시 공무직 채용 및 복무 등에 관한 조례 제정안'을 두고 기존 공무원과 무기계약직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조례안은 이달 3일 소관 상임위원회(행정자치위)에 상정됐고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인 서울시의회 구성 상 조례안 통과가 확정적인 상황이다.

전국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무직지부가 지난 10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공무직(무기계약직) 처우개선을 위한 조례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시의회가 조례 제정에 나선 이유는 "여전히 무기계약직들이 약자 신분"이라는 것이다. 김용석 민주당 대표의원은 "무기계약직은 상·하수도 정비, 도로 보수, 시설물 관리, 의료폐기물 청소 등 어렵고 힘든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이고 공무원의 업무지시에 따라야 하는 상대적 약자"라며 "이번에 발의된 조례는 근무연한 차별, 열악한 근로환경으로 고통받는 무기계약직을 위한 최소한의 법·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례안 주요 내용은 △상시·지속적 업무가 새로 발생할 경우 무기계약직 우선 채용 △동종 또는 유사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에 비해 보수·복무 등 노동조건에서 무기계약직에 불리한 처우 금지 △무기계약직 인사관리 위원회를 설치하고 무기계약직 노조 추천인을 위원에 포함 △무기계약직 퇴직 또는 계약 해지 시 퇴직급여 지급 △20년 이상 근속한 무기계약직의 경우 정년 전 스스로 퇴직할 시 명예퇴직 수당 지급 등이다.

시 공무원들은 무기계약직에게 특혜가 주어지고 자칫 지위가 역전될 우려마저 있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무원노조 산하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서공노)은 공무원시험이라는 채용절차를 통해 뽑힌 자신들과 용역업체에서 일하다 들어온 무기계약직 간 처우 차이는 엄연히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조례로 무기계약직에 대한 공무원들의 복무관리와 업무지시가 어려워진다고 강조한다. 서공노는 특히 결원이나 신규업무 발생 시 무기계약직 우선채용, 인사관리위원회에 무기계약직 노조 추천인 포함 등에 강하게 반발했다.

기존 공무원 요구대로 조례가 통과돼도 시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간 노동존중특별시를 표방하며 정부보다 앞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온 박 시장 입장에서 무기계약직 처우개선 조례를 거부할 명분 찾기는 쉽지 않다.

기존 공무원과 무기계약직 갈등이 격화되면서 박 시장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노노 갈등이 결국 노동자 권리 축소, 일자리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도입 당시엔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지위를 개선 효과가 컸던 무기계약직이 10년 이상 정체되면서 각종 문제를 낳고 있다"며 "특히 법적으론 정규직 적용을 받으면서 차별은 시정이 되지 않는 등 오히려 불리한 신분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과도한 처우개선은 보완하되 격차 해소를 방치하고 이권 다툼을 벌인다면 공공부문 일자리 전체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증가와 함께 지속적으로 생길 수 있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원칙'을 재점검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현재 벌어지는 공공부문 노노 갈등은 채용 과정 차이를 부각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노 소장은 "임금과 처우는 어떻게 채용됐느냐가 아닌 어떤 일을 어느만큼 하고 있느냐인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이 기준이 돼야 한다"면서 "업무의 유사성과 지속성이 처우 개선의 기준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채용에 따른 차이 인정 방안, 무기계약직 분야 채용 투명성, 공정성 개선 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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