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도 않은 말이 적혀 있더라” 피해자 증언

시민단체, 조작사건 관련해 인권위 진정

“난민면접 전수조사하고 피해보상해야"

법무부 산하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일부가 난민 신청자들의 면접조서를 조작해 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18일 난민인권센터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최한 ‘법무부 난민 면접 조작 사건 피해자 증언대회’에선 피해를 입은 난민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법무부 난민면접 조작사건 피해자 증언대회 | 18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난민인권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법무부 난민면접 조작사건 피해자 증언대회에 피해를 본 난민신청자들이 증언을 위해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이집트인 사브리는 이집트 시민혁명에 참가했다가 정부의 수배대상이 돼 한국에 망명신청을 했다. 사브리는 “2016년에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면접을 했는데 당시 서류가 조작됐다는 걸 2017년에 알았다”면서 “심사관이 작성한 면접조서에는 ‘이집트에서 아무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 일자리를 찾아서 왔다’ ‘형이 외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사브리는 이집트에서 영어학원에서 근무했고, 사브리의 쌍둥이 형제는 당시 이집트에서 수감중이었다.

이집트의 유명 인권단체에서 일했던 라힘(가명)은 이집트 인권상황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등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 정부의 박해를 피해 2016년 5월에 한국으로 넘어와 난민 인정 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다. 이후 난민 불인정 이유를 알아보다가 서울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했던 면접 서류에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이 적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면접에서 라힘은 자신이 참여한 정치활동, 시위 과정에서 이집트 군인이 자신의 카메라를 부수고 다리까지 부러뜨린 내용을 이야기했는데 면접서류에는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여기 왔고 이집트에서는 어떠한 위험에 처하거나 처벌을 받은 적이 없으며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고 말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

라힘은 이후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을 내 법정 다툼 끝에 지난해 난민 인정을 받았다.

난민 신청자들의 행정 소송을 대리한 권영실 변호사(재단법인 동천)는 "여러 난민 관련 단체에서 유사사례를 모아보니 난민 불인정 결정서에 판에 박힌 내용이 담겨 있었고 통역인의 서명이 똑같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난민인권센터는 난민심사 과정에서 난민심사관과 아랍어 통역인에 의한 면접조서가 허위로 작성된 것과 관련해 지난해 7월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고 인권위는 빠르면 다음달 중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자체조사를 통해 총 55건을 직권취소하고 재면접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난민인권센터는 "법무부가 어떤 사건을 골라 조사했고 어떤 기준으로 직권 취소했는지 여전히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며 "당시 조작사건에 관여한 공무원들도 문책이 이뤄지지 않아 여전히 출입국 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무부는 이 사건이 한 공무원 또는 한 통역인 개인의 잘못인 것처럼 꼬리자르기를 하려 했지만 언론 취재 등으로 법무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법무부는 책임자를 밝혀 처벌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난민심사과정에서 가해지는 인권침해 행위를 당장 중단하고 근본적인 난민심사절차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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