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승 대한법무사협회장

한국에서 법률가는 특별한 존재였다. 해방 후 군사독재정권을 겪으면서 이와 결부되어 법률가는 특권문화를 이루어 왔다. 1963년생 필자만 해도 “자식 낳으면 판검사 시키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던 부모님 세대의 말을 들으면서 법률가 경외시절을 살아온 기억이 있다. 신파극 ‘검사와 여선생’을 떠올리면서 사법기관에 대한 순진한 이상을 꿈꾸던 그런 시절이었다.

권위주의 하면 군사문화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에 군사문화가 끼친 악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군사문화와 더불어 권위주의를 대표해 온 것을 꼽으라면 법률권위주의를 들 수 있겠다. 무(武)에서의 군사권위주의가 지배해 오는 동안 문(文)에서는 법률가특권주의가 독버섯처럼 싹터왔다. 이는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가 체제 옹호를 위해 법률엘리트에 의지한 데서 비롯된 바가 크다. 군사문화가 법률문화의 촉매제나 버팀목 역할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까닭이다.

가혹한 법보다 가혹한 법률가가 더 무서울 수 있음 알아야

지금껏 우리사회를 지배해 온 법률권위주의는 비뚤어진 법률문화를 형성해 왔다. 그릇된 법률문화는 이른바 ‘법률가들만의 리그’라는 사회병리현상을 초래하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어려운 법률용어의 여과 없는 구사와 전문가조차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판결서 등에서 정작 시민들은 소외되어 있었다.

법률가의 전문성을 문제 삼고자 함이 결코 아니다. 법이 법률가 우월적 사고의 방편으로 이용되어 왔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혹한 법보다 가혹한 법률가가 더 무서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법률가들은 겉으로 시민을 내세우면서 뒤에서는 그 위에 군림해 온 측면이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법률가의 남은 양심이다.

도랑을 의미하는 ‘구거’(溝渠), 속여 빼앗는 것을 의미하는 ‘편취’(騙取), 게을리함을 의미하는 ‘해태’(懈怠) 등을 일반시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하지 아니하다’, ‘아니 된다’ 등의 고어체도 마찬가지다. 단정적 표현 대신 불명확한 언어로써 본질을 애매모호하게 흐리기에 딱 좋은 법 언어다. 법률가들은 오랫동안 이런 용어를 즐겨 사용해 왔고 이런 데서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부각시켜 온 감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법률문화를 학습하고 경험해 온 탓이다.

권위의식은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근본적 애정이 부족한데서 비롯된다. 인간애가 없는 법률가는 오히려 사회에 해악이 될 수 있다. 인간애는 타인 존재의 인정에서 출발하여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나타난다. 이러한 타인에 대한 인정은 스스로에 대한 앎에서 나온다. 이 앎은 현재의 내가 오직 나 자신 만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도움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법이라는 말에는 매우 매혹적이나 딱히 손에 잡히지 않는 정의관념이 자리하고 있다. 정의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형평성을 추구한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보면 그것은 곧 타인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법률가의 모든 사고와 행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다.

모르긴 해도 법률가들은 헌법이 선언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수십, 수백 번도 더 읊조렸을 것이다. 문제는 이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왔는가 하는 점이다. 머리로만 관념지어 온 인간 존엄성에서 타인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묻어나올 리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은 주권자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그 권리를 찾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 2016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이어졌던 촛불혁명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이제 국민과 유리되어서는 어떤 법도, 법률가도 더 이상 우리사회에 발붙이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법은 주권자인 국민의 것인 만큼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법은 주권자인 국민의 것인 만큼 국민을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입법이 이루어지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을 위하여 법이 운용되어야 하며, 국민이 납득할 만한 재판이 행해져야 한다. 변호사나 법무사를 비롯한 법률가들의 법률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쯤에서 한 어쭙잖은 법률가가 한국의 법률가들에게 감히 고하고자 한다. “이제 법률가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법률을 그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