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14, 15세 아동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성관계)하면 3년 이상 징역, 추행하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한 아청법(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8조의 2가 지난 7월 16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언론은 긍정적인 코멘트를 했고 이렇게라도 아동 성보호가 나아져 다행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규정의 출현으로 걱정이 앞섭니다. 진전이기는 커녕 오히려, 아동을 보호할 국가의 책무를 직무유기하고 있는 게으른 입법으로 보입니다.

이 조항이 나온 배경에 대해 생소하신, 그러나 아동 성보호에 관해 정상적인 감각을 가지신 분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아니 여태 아동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해서 성관계해도 처벌을 안 받았단 말이야?"

네, 맞습니다. 우리나라는 성관계 동의연령이 13세로, 형법상 미성년자의제강간 조항이 12세까지만 보호하기 때문에 13세 이상 아동과 성관계 해도 상대방이 처벌받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13세 이상 아이를 폭행, 협박, 위계, 위력을 사용해 성관계하지 않는 이상 처벌되지 않았고, 만일 대가관계라고 할 만한 무어라도 제공되면 단박에 '성매매'로 포섭되어 아이는 대향범이 되고 보호처분에 처해지며 상대의 가벌성은 낮아졌습니다. 이번 아청법 8조의 2 시행으로 '궁박한 상태를 이용'이 추가된 것뿐입니다. 그것도 13, 14, 15세에 한해서.

그래서 13, 14, 15, 16, 17, 18세 아동이 '궁박'하지만 않으면, 설령 궁박하더라도 이를 상대 성인이 몰랐거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할 의사가 없었다면, 그 아이들을 데리고 섹스하거나 추행해도 된다는 싸인을 줍니다, 이 법은!

그리고 13, 14, 15세 아이들은 섹스 상대 어른이 자신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그때 얼마나 비참하고 곤궁한 상태였는지, 상대 어른이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어떻게 이용했고 자신이 어떻게 당한 것인지를, 세세히 괴롭게 떠올리며 경찰, 검찰, 법원에서 진술을 되풀이해야 합니다. 이런 2차 피해와 상처를 감당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법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만든 겁니다, 이 법은!

실로 무지하고 안이한 입법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도대체 '아동'의 '궁박 상태'란 무엇일까요. 넌 궁박해, 그러니 보호받자! 아냐, 넌 궁박하지 않아, 그러니 스스로 감당해라! 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이를 가를 수 있단 것일까요.

이 법은 '아동'이 어떤 존재인지에 관한 근본적으로 그릇된 인식과 전제에 서 있지 않은가 의심스럽습니다.

'아동'은, 즉 사회가 '성인'이라고 법률행위능력과 정치참여자격과 그 밖의 모든 의사결정과 행위를 자유롭게 해도 된다고 선언해 주는 연령 이상의 인간이 되기까지 계속해서 자라고 있는 과정에 있는 인간은, 그에 요구되는 모든 필요(needs)가 채워져야 하는, 그 자체가 '궁박'한 존재입니다. 법률적, 경제적, 사회적,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으로 모든 면에서 취약하고 돌봐져야 하고 지켜져야 할 존재들입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자료에 의하면, 성매매에 이용당한 아동의 최초 당한 시점이, 가출한 그날 밤 23.8%, 다음날부터 일주일까지 31.7%로, 아동이 가출해서 일주일 안에 55.5%라는 절반 이상이 성매매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평균 만 14.7세였고요. 아동이 가출하기만 하면 곧바로 성매매에 이용당하는 사회의 실태를 도외시한 채, 나이에 따라 또는 '궁박'이라는 자의적 기준으로 그 보호에 차이를 두는 것이 합당할까요.

아동은 돌봄과 보살핌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하고 이해, 지원, 도움이 필요한, 원래 그 자체가 궁박한 존재들입니다.

학대를 당하다가 가출한 아이가 그날 밤 잘 곳이 없어 성매매에 이용된 경우와, 진로 고민에 부모와 다투다가 이해를 못 받는다는 좌절감에 가출해서 그날 밤 성매매에 이용된 경우를 과연 '궁박'한가, 아닌가로 구별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필요에 관해 어떤 결핍을 사회에 호소할 때, 어떤 어른들은 그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척하면서 이를 이용하여 그 아이들의 성을 취합니다. 아이들의 성을 매수하는 것은 아이의 성을 착취(exploitation)하는 것으로서 비난되고 처벌받아야 마땅하고, 그 아이는 단지 성착취 피해자로만 취급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아청법상 성매수범죄 대상이 된 아동을 처벌적(아동이 느끼기에) 절차로 취급한 '대상아동' 개념을 삭제하라는 사회적 요청과, 미성년자의제강간 연령이 너무 낮아 국회에 계속해서 연령상향 입법안이 올랐던 상황들이 도외시되고, 그저 아청법에 가중처벌 조항 하나 끼워 넣은 것으로 아동 성보호에 진전이 있는 것처럼 보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나태함입니다.

차회에 <우리나라 성관계 동의연령을 높여야 하는 이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청법상 '대상아동' 개념은 완전히 삭제되어야 한다>라는 글로 여러분을 다시 찾아가겠습니다.

[특별기고│임수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부장판사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