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아베정권의 한국 때리기가 도를 넘고 있다. 기실 정한론을 주창한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한다는 아베신조 총리로서는 외조부인 기시노부다케가 못이룬 ‘대동아공영’의 꿈을 이루고 싶은 욕망이 가득 할테니 어찌 보면 예측 가능한 수순이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이 바로 조선침략의 선봉이었던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이니 아베정권의 DNA에는 조선은 정복대상이지 신뢰할 협력국이 아닐 수도 있다. 야마구치에 뿌리를 둔 ‘정한 세력’은 패망 이후에도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계속 걸어왔다.

조선인 강제징용 은폐 위해 유네스코 이용

2015년 메이지시기 산업유산의 유네스코 등재는 고도의 계산 중에 하나였다.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 등을 은폐 은닉하기 위해 유산의 전 기간이 아닌 1850년부터 1910년으로 역사를 발췌하고, 아소탄광(현 아소다로부총리 조부 운영) 등 악명높은 강제노동시설은 등재 목록에서 빼고, 요시다 쇼인이 조선침략을 위해 제자들을 길러낸 학원 ‘쇼카손주쿠’을 목록에 포함할 때부터 아베정권의 의도는 노골적이었다. 목표는 전쟁가능한 국가 실현이다.

당시 등재에 반대하는 국제사회와 국내여론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정권은 밀약을 통해 아베정권과 등재에 합의해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파묻기 위한 역사세척에 부역한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도 생생하다. 14살 소년이 군함도(하시마)로 끌려가 바닷 속 탄광에서 목숨을 걸고 버텼다는 고 최장섭 어르신의 메마른 눈물. 나카시마 공장으로 끌려가 원폭피해를 당한 김한수어르신의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일제 만행을 폭로하고 희생된 동료들을 천도하는 것’이라며 유네스코 총회가 열리는 독일 본으로 가서 항의하다 안되면 자결이라도 하겠다는 그 분연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아소탄광에서 수없이 탈출하다 잡혀 몰매를 맞다 청각을 잃으신 공재수 어르신의 한 많은 눈물, 외신기자클럽에서 일제의 만행과 조선인의 참상을 고발하던 양금덕어르신. 당시 정부는 이 분들의 눈물을 닦아주었어야 했다.

필자는 당시 유네스코 총회가 열리는 독일 본에 있었다. 강제징용 피해단체들과 ‘강제노동 인정 안하는 유네스코 등재저지’가 목적이었다. 우리의 호소에 독일 전역의 재독 동포들이 모였다. 39도 폭염아래 5일간 계속하여 ‘강제징용 인정’'일본정부 사과’을 요구하면서 메이지산업유산의 참상을 고발하였다.

그러나 국내 언론에 보여지는 정부 모습과 현장과는 딴판이었다. 일본 정부는 미리부터 심사위원국을 대상으로 사활적으로 설득하고 다니는데 한국정부 인사들은 총회 장소를 비우기 일쑤였고 심지어 리서치요원으로 참석한 대학원생 홀로 정부를 대표해 발언하는 총회 영상 장면도 있다. 당시 연합국 포로들의 반인권적 강제노동 사실 등이 폭로되면서 미국의회가 등재반대 성명을 내고 중국은 외교부를 통해 반대입장을 발표했다. 이런 국제사회 반대여론으로 등재심사는 하루 보류됐고, 가장 피해가 큰 한국정부와의 합의를 총회 의장은 요청했다.

하지만 다음 날 오후 등재심사가 개시되었고 일사천리로 등재가 확정되었다. 한국정부는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처음으로 ‘강제노동’사실을 인정한 기록을 남긴 것이 성과라 하였지만 회의록 본문에 그 사실은 적시되지 않았다. 오히러 일본은 즉후 강제노동사실을 부정하는 발표를 했는데, 아베총리는 이에 대해 ‘한국정부가 항의하지 않았다’고 인터뷰했다.

일본정부 치밀한 계산, 우리 정부는 형식적

메이지시기산업유산 등재는 최악의 세계유산 등재로 기록될 것이다.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한 이후 일본 자금 의존도가 커진 상황에서 국제사회는 유산의 빛만 보여주고 반인권적 실태는 외면하였다. 그나마 유네스코가 일본정부에 강제노동사실을 적시하라고 권고하였지만 일본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권고 기한을 넘겨 내년 2차 권고시한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해 등재된 군함도를 비롯하여 8곳을 모니터링한 결과 그 어떤 곳도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 아베정권은 이행할 의지도 계획도 목적도 없는만큼 등재삭제운동을 유네스코를 비롯 국제사회에 촉구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