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숙 난민인권센터 활동가

“몸에 고문 흔적이 명백한데도 쳐다보지도 않고 일을 하러 왔으며 박해사유가 없다고 써내려 갔다.” “앞에 여성이 앉아 있는데도 남성이라고 기록 했다.” 지난 6월 18일 난민면접 조작사건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나온 난민심사 면접 당시 상황들이다. 수십 건의 면접조서 기록에는 하나 같이 “합법적으로 장기간 체류하며 돈을 벌기 위해 난민 신청을 했다”는 하지도 않은 말이 판에 박힌 듯 적혀 있었다.

법무부가 강요했던 난민심사 신속 처리

이와 같은 거짓 조서로 난민신청자들이 난민인정심사에서 대거 탈락한 것은 법무부가 난민심사적체 해소 정책을 강화했던 2015년에서 2017년 사이였다. 당시 법무부의 지침에 따라 서울출입국사무소(현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등은 신속심사 TF를 구성하고, 난민 신청 대상 중 ‘신속 처리’에 해당하는 케이스들을 간이면접을 통해 처리하도록 했다.

법무부가 자체 조사해 밝힌 55건의 면접조서 조작 사건들은 모두 ‘신속 처리’ 과정에서 발생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2015년 9월에 서울출입국사무소에 내려온 법무부 작성 문건은 신속심사 처리 목표치와 처리기한까지 명시하여 신속 처리를 지시하고 있다.

면접 조작사건 피해자들이 심사과정에서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 ‘증거자료는 받지 않겠다’, ‘묻지 않은 말에는 대답하지 말아라’는 식의 부당한 요구와 대우를 받은 것은 이러한 난민심사의 무리한 ‘신속처리’ 과정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침을 따르기 위한 압박으로 인해 허위로 조서를 작성한 공무원들이 더 있을 것이라는 법무부 내부 관계자의 진술도 있었으며, 심지어 명백히 난민법 위반인 공익법무관들을 심사에 동원하기도 하기도 했다.

난민심사는 여느 행정적 심사절차와는 달리 난민신청자의 생명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엄중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면접 조작 사건은 단순히 공무원의 위법행위, 심사절차의 불공정성이라는 문제를 넘어, 난민들의 생사여탈권을 박탈한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죽음과 박해를 피하기 위해 탈출한 난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진행되어야 할 난민심사 과정을 단순히 밀려드는 숫자들을 빨리 처리하고 정해진 기한 내 목표 실적을 요구한다는 발상 자체가 위법적이다.

이로 인해 박해 사유조차 제대로 말할 수 없었던 난민신청자들이 겪었어야 할 정신적 고통과 신체의 고난은 어디에서도 말해지지 않는다. 이들은 결국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불복절차들을 거치며 수개월, 수년을 유랑하다가 구금과 강제송환이라는 여정으로 내몰린다.

추가로 밝혀져야 할 것들

이번 면접조서 조작사건이 이집트, 수단 등 특정 아랍국가 케이스에 몰려 있었던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단지 한 명의 잘못된 아랍어 통역인 때문에 그랬다는 설명은 가히 충격적이다. 표준 아랍어 능통자도 어려워 하는 특정 국가의 아랍어 구어체 등을 통역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국가들을 선별한 것인지, 아직 다른 언어권 피해 사례는 드러나지 않은 것인지 법무부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법무부가 자체 조사해 밝힌 55건 외에도 추가 피해 사례가 신고되고 있고, 관여한 공무원들이 더 있을 것이라는 내부 관계자의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인 만큼 법무부는 감찰을 마무리할 것이 아니라 전체 사건의 윤곽을 재조사해야 한다. 노골적인 진술 조작 외에도 박해사유를 제대로 질문하지 않거나 증거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등의 졸속 심사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 사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난민들에게 2차적인 불이익이 가해지는 일이 없도록 법무부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미처 피해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난민들에 대해 실질적인 보호와 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신속심사를 지시한 당시 법무부 장관 및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이 응당한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법무부는 난민심사의 벽을 높이고, 통역 업무를 외주화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난민법 개악을 예정하고 있다. 조작사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